훈춘의 진주, 연변 최고의 연꽃늪을 가진 생태 마을 권하촌

한자 琿春의 珍珠, 延邊 最高의 蓮꽃 늪을 가진 生態 마을 圈河村
분야 지리/인문 지리|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 경신진 권하촌  
시대 현대/현대
옛 식염 산지(食鹽産地)에 마을이 들어서기까지

『훈춘 향토지(琿春鄕土志)』의 기록에 따르면, 두만강 하류에 자리 잡고 있는 길림성(吉林省) 훈춘시(琿春市) 경신진(敬信鎭)은 금(金)나라 시기에는 소금이 생산되던 곳이었다. 1714년 훈춘에 협령(協領)이 설립되면서 이곳에 마을이 들어서기 시작하였고, 1881년 4월 흑정자(黑頂子)에 초간국(招墾局)이 서면서 두만강 건너 경흥(慶興)의 조선인들이 이주해 왔다.

1932년 만주국에서 향촌제(鄕村制)를 실시하면서 경신향으로 되었고, 1934년 보갑제(保甲制)가 실시되면서 경신보(敬信保), 1936년에 다시 가촌제(街村制)가 실시되면서 경신촌(村)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1983년에 경신향(敬信鄕)으로, 1992년에는 경신진(敬信鎭)으로 바뀌었다.

경신진 소재지는 이도포(二道泡)이다. 이도포(二道泡)는 1881년에 세워진 부락으로 봉무동(鳳舞洞), 연화동(蓮花洞), 남화동(南花洞) 등 세 개의 자연 마을이 합쳐져 이루어졌다. 현재 경신진에는 이도포(二道泡), 권하(圈河), 회룡봉(回龍峰) 등 14개의 행정촌이 포함되어 있다. 경신벌은 경신진이 생긴 후로 불려온 이름이고 원명은 전설이 깃들어 있는 권하(圈河)벌이라고 한다. 지금의 권하촌(圈河村)경신진의 14개 행정촌의 하나이다.

경신진은 길림성의 동남부에 위치해 있으며, 동북으로는 러시아연해주 핫산 지구, 서남으로는 북한함경북도 새별군, 은덕군(恩德郡), 나선시(羅先市)와 인접해 있으며 332㎢에 150여 ㎞의 접경선을 가지고 있다. 두만강 연안과 경신벌의 해발 고도는 5~30m이고 해양성 기후로 여름이 서늘하고 겨울이 포근하며 서리가 내리지 않는 기간은 140~160일에 달한다.

어미지향(魚米之饗), 자연 생태 습지 권하벌

권하벌은 훈춘시에서 두 번째로 큰 벌로써 자연 자원이 풍부한 자연 생태 습지이다. 2011년 7월, 길림성 환경 보호청(吉林省環境保護廳)으로부터 길림성 생태향진(吉林省生態鄕鎭)으로 지정되었다. 이에 따른 정부 투자는 약 10억 위안 정도의 규모이다. 경신벌은 면적이 327㎢로서 1,200여 ㏊의 초지와 파랗게 빛나는 거울처럼 안겨오는 아홉 개의 아름다운 호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호수가 별처럼 널려있는 경신벌에서는 낚싯대만 드리우면 10∼20㎏ 되는 월척(越尺)들이 꼬리를 물고 나오고 채를 친 청무와 함께 무친 새빨간 붕어회나 황어회는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고 한다. 이러한 재미에 여자들도 낚싯대를 들고 다니는 풍경은 이곳이 아마 유일할 것이다. 호수마다 물고기가 뛰놀고 갈매기 떼가 두만강을 거슬러 올라와 호수면을 자유로이 날아 다닌다.

철새의 도래지로 봄이면 기러기 물새들이 떼 지어 찾아들고 여름이면 연꽃이 만발하여 흡사 한 폭의 산수화를 방불케 한다. 2002년 1월 28일자 『인민 일보』 8면의 “미재(美哉), 도문강 홍련(圖門江紅蓮)”이란 제목의 기사에 의하면, 중국 화훼 협회[中國花卉協會] 연꽃 분과 회장 왕기초(王其超), 장언행(張言行) 교수가 두 번 훈춘을 방문하여 고찰과 고증을 거쳐 최종적으로 경신의 연꽃은 1억 3천 5백 년 전부터 서식한 야생 연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울러 훈춘의 연꽃을 “두만강 홍련”이라고 명명하였다.

노야령(老爺嶺) 산줄기에 연이은 오가산 자락에서 수류봉(水流峰) 기슭까지 쭉 펼쳐진 권하벌을 둘러싼 수려한 산에는 저마다 다양한 전설이 깃들어 있다. 권하벌 동남에는 수리봉[鷹峰]이 있으며 해발 고도는 462m이다. 봉우리 상공으로 독수리가 날아오르고 바위 벼랑에 새끼를 친다고 하서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엔 옌지봉이라 하였고, 중·러 국경에 자리했고 또 주위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라서 봉화대이기도 하였다. 만주족들은 이를 싸무둔[沙木墩], 한족들은 운대산(雲臺山)이라도 불렀는데, 지금은 수리봉을 음역하여 수류봉(水流峰)이라 부른다.

수류봉에 오르면 중국, 북한, 러시아 3국이 한눈에 안겨온다. 두만강권하인도교를 건너면 조선의 선봉군(先峰郡)에, 육로로 오가산(五家山)을 넘으면 러시아의 크라스키노, 두만강 물길 따라 배를 띄우면 동해에 이른다. 또한 기러기 떼와 청동 물오리 등 귀중한 조류들의 서식지이기도 하며 초원과 임지가 있어 목축업에도 적격이며 “어미지향”(御米之鄕) 으로도 유명하다.

최근에는 중국 정부에서 추진 중인 ‘창지투’[장춘(長春)-지린(吉林)-투먼(圖門)] 개발과 북한의 나진-선봉 지역 진출의 창구로서 동북 아시아 금삼각주의 명주(明珠)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권하 통상구는 국가 1류 통상구로서 북한원정리(元汀里) 통상구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하고 있고 북한나선 자유 경제 무역구와 직접 왕래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다. 바야흐로 권하 통상구는 국내 무역 다국 운송과 국제 관광의 황금 통로로 부상하고 있다.

다양한 전설이 굽이치는 곳, 권하(圈河)

전설은 인간의 소망을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대부분의 전설도 그러하다. 백두산으로부터 동해에 이르기까지 산과 강에 깃든 전설들은 괴물과 싸워 승리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한민족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외세의 침략에서 받은 피눈물 고인 고통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옛 선조들은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비상한 재주를 가진 귀인이 나타나 자신들을 고난에서 구해줄 것을 오매에도 바랐던 것 같다.

훈춘 경신벌 오도포(五道泡)에서 동남으로 꼬불꼬불 에돌아간 한줄기 강을 가리켜 사람들은 권하(圈河)라고 부른다. 멀리 흘러갔다 다시 되돌아와 원줄기와 맞붙을 듯 흐르는 강 굽이굽이에는 비장한 전설들이 깃들여져 있다. 중국 조선족 제2 세대 민담 채집자 정영석(丁永錫)은 그의 『민담 채집록』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아득히 멀고 먼 옛날, 이곳 연화동(蓮花洞)[현 권하촌]에는 마음씨 착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단란히 모여 화목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해 가을, 북쪽으로부터 괴물들이 몰려와 재물을 약탈하고 여인들을 납치해 갔다. 지상 낙원 연화동은 무시로 재앙을 입게 되었고 백성들은 도탄 속에서 허덕이게 되었다.

그 때 이 마을에는 이씨 성을 가진 용맹한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젊은이는 이 괴물을 처단하고 빼앗긴 행복을 다시 찾아오리라 굳게 결심하고 활쏘기 재간을 익혔다. 삼년 석 달 열흘을 하루같이 활쏘기에 정력을 모은 그는 한 화살에 기러기도 두세 마리씩 꿰는 명궁수로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북으로부터 광풍이 일고 먹장 구름이 쓸어오기 시작하였다. 젊은이가 이마에 손을 얹고 쳐다보니 구름 속에서 백룡과 흑룡이 꼬리를 저으면서 조화를 부리고 있었다. 틀림없는 괴물 두목이었다. 젊은이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활에 살을 메웠다. 그가 백룡을 겨누고 팽팽해진 시위줄을 슬쩍 놓자 화살은 ‘슈-욱!’ 소리와 함께 백룡을 향하여 번개같이 날아갔다. 화살은 면바로 백룡의 숨통에 박혔다. 백룡은 피를 토하며 몸부림치다가 훈춘벌 복판에 있는 나지막한 산에 부딪쳐서 대가리가 박살났다. 후세 사람들은 이 산을 용두산(龍頭山)이라고 불렀다.

백룡이 떨어지자 흑룡은 황황히 도망쳤다. 젊은이는 흑룡을 산채로 잡아서 동리 사람들의 원한을 풀어주려고 마음 먹었다. 그는 베실로 꼰 노끈을 화살 뒤 끝에 매고 흑룡의 눈통을 겨누어 활을 쏘았다. 화살은 면바로 흑룡의 눈알에 푹 꽂혔다. 흑룡은 피똥을 갈기며 오도포(五道泡) 부근에 떨어졌다. 젊은이는 삼각산 마루의 바위에 발을 붙이고 지그시 노끈을 당겼다. 흑룡은 땅을 파헤치며 용을 썼다. 그 바람에 깊숙한 골에 아흔 아홉 굽이가 패였다. 베실로 꼰 노끈이 끊어지는 바람에 흑룡은 간신히 두만강에 기어들었다. 강을 따라 40여리를 창황히 도주하던 흑룡은 바다의 바위섬에 대가리를 부딪쳤다. 흑룡은 섬을 피로 물들이고 죽었다.

후세 사람들은 이 섬이 붉다고 하여 붉은 적(赤)자에 땅 지(地)자를 붙여서 적지섬이라고 불렀다. 그 후 세월이 흘러가며 흑룡이 파고 지난 아흔 아홉 굽이에 빗물이 고이고 늪 물이 흘러들어 강이 되었고 굽이굽이 에돌아 흐른다고 권하(圈河)라 불렀던 것이다.”

이처럼 용맹한 총각의 화살에 맞아 용을 쓰고 죽어간 흑룡의 자취가 아흔 아홉 굽이 강줄기를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는가 하면, 또 미꾸라지정이 동해 용왕의 자리를 넘보고 동해 바다로 파헤치고 가다가 아흔 아홉 굽이 만에 기진맥진해서 오줌을 싸갈기고 쓰러졌다는 전설의 권하, 만약 그때 한 굽이만 더해서 백 굽이가 되었더라면 이곳에 서울이 들어섰을 것이고 바닷길도 열렸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옛날 발해 시대에 일본과의 왕래가 훈춘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볼 때, 이 전설의 땅이 지리적으로 그 얼마나 중요한 요충지인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현재는 두만강 범람으로 인한 호수들의 홍수 방지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권하의 발원지인 오도포(五道泡)를 포함한 칠도포(七道泡), 팔도포(八道泡), 구도포(九道泡) 네 개 호수를 저수지로 만들고 용산 저수지 혹은 용산호(龍山湖)라고 통틀어 부른다. 이곳은 주로 낚시터로 개방되어 산수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으로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천혜의 꽃 ― 두만강 홍련

현재 권하벌은 동북아의 ‘금삼각(金三角)’으로 세인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이곳은 총면적이 5,844㏊에 달하는 자연 자원이 풍부한 생태 습지이다. 이곳은 또한 고인 물 진흙 속에 뿌리를 박았으나 속세에 젖을 줄 모르는 전설의 꽃, ‘두만강홍련’으로 불리는 야생 연꽃의 고향이기도 하다. 1억 3천 5백년의 역사를 아로 새긴 두만강 홍련은 권하벌의 또 다른 자랑 거리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은 2천 7백년이라는 연꽃 재배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연꽃 품종도 다양하여 200여 종에 달한다고 한다. 연꽃 전문가들의 고증에 의하면 두만강 홍련은 꽃송이가 크고 붉은색, 흰색, 분홍색이 어울려 유난히 아름다워 그 중에서도 으뜸으로 가는 진귀한 품종이라고 한다. 연꽃은 중국 10대 명화(名花) 중의 하나로 일명 ‘부용(芙蓉)’이라고도 하고 ‘하화(荷花)’라고도 한다. 자고로 수많은 시인들의 시문과 화가들의 회화, 그리고 촬영가들의 사진 속에 끊임없이 오른 것 만 보아도 그 존재의 고귀함은 알만 하다.

이토록 진귀한 야생 연꽃이 오랜 세월 동안 경신벌에 서식할 수 있다는 게 참으로 신비스럽기만 하다. 연꽃은 아무 데서나 아무렇게나 피어나는 꽃이 아니다. 청초하고 우아하고 고결한 기품에 고상한 정신 지조를 가진 연꽃은 천혜의 땅에서만 피어나는 ‘천혜의 꽃’이라고 한다. 흐르는 물도 아니고 깨끗한 물도 아닌 고인 물에 살지만 줄기와 잎과 꽃 전체가 조화를 이루면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청아함을 지니고 있다. 부드러운 곡선미에 예쁜 문양의 여덟 개의 커다란 꽃잎으로 포용할 줄 아는 연꽃은 상징성이 높은 꽃이다.

연꽃은 우선 문학 예술이 추구하는 진선미와 깨달음의 상징이다. 또한 불교에서는 극락 세계를 ‘연방(蓮坊)’ 또는 ‘연옥(蓮玉)’이라고 하는데 이는 연꽃이 정토(淨土)의 상징이기 때문이리라. 연꽃은 씨주머니에 많은 씨앗을 담고 있기에 민간에서는 다산의 징표로도 선호하고 있다. 때문에 건축물과 여성들의 복식, 자수 등에 빠질 수 없는 전통과 예술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낮이면 활짝 피었다가 저녁이면 봉오리를 짓고 이튿날 다시 해를 보고서야 피는 두만강 홍련은 수줍음을 타는 예쁜 아가씨를 방불케 한다. 두만강 홍련은 또한 착한 심성의 아가씨이다. 지금도 이곳 사람들은 일 년에 두만강 홍련을 한 번만 보아도 온 가족이 축복 받는다고 굳게 믿고 있다.

권하 태생인 김광익(金光翼)은 기사(己巳)년 왕가물에 함경북도 경원군에서 이곳에 이주해온 조선인 3세로서 광복 전의 그 굶주리고 처참한 삶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소작 농사를 했지라우. 소작세가 3:7, 지주한테 7할을 바쳐야 했으니 봄이면 당연히 결량이 되었수. 그래서 삵김을 매기도 하고 강에 나가 조개를 줍기도 하고 늪에 가서 연밥을 뜯어 식량 보탬을 하기도 했지우......”이처럼 두만강 홍련은 근근득식하며 겨우 겨우 연명하는 조선인 이주민들의 기아를 달래주고 삶의 희망을 불러일으켜준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두만강 홍련은 그야말로 그 당시 이주민들의 생명의 은인인 것이다.

전설의 꽃 두만강 홍련이 피어나는 권하벌이 풍요로운 산과 강과 들과 호수와 더불어 훈춘의 명주(明珠)로 더욱 빛나고 번창할 것을 기대해 본다.

참고문헌
  • 박득룡, 「신비로운 어미지향」(연변인민출판사)
  • 훈춘시 지방지 편찬 위원회, 『훈춘시지(琿春市志)』1914-1987
  • 서종위, 『찬(纂), 훈춘 향토지(琿春鄕土志), 유인본(油印本)』(길림성 도서관, 1960)
  • 훈춘시 지방지 편찬 위원회, 『훈춘시지(琿春市志)』1988-2005
  • 유연산, 『혈연의 강』상권(중국 연변인민출판사, 1999)
  • 박청산, 『천리 두만강』(중국 연변인민출판사, 2005)
  • 김동진, 「노을강을 건너가는 무아의 날개」(『연변 문학(延邊 文學)』, 2007. 6)
  • 박득룡, 「훈춘 권하 통상구 "황금 통로"로 부상」(『연변 일보』, 2011. 8. 5)
  • 길림성 환경 보호청(吉林省環境保護廳)(http://hbt.jl.gov.cn)
  • 중국 훈춘(中國 琿春) (http://www.hunchun.gov.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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