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龍井 佛敎의 聖地이자 松茸의 最大 産地, 天佛指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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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지리/자연 지리|종교/불교|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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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9년 |
| 산 | 동경 129° 16′ ~ 129° 46′ |
용정시 시가지로부터 남쪽으로 10.2㎞ 떨어진 두만강(豆滿江)[중국에서는 도문강(圖們江)으로 부름] 기슭엔 천혜의 보물고이자 살아 숨 쉬는 명산인 천불지산(天佛指山)이 있다. 동경 129° 16′ ~ 129° 46′ 위치에 있는 천불지산은 해발 높이가 1,265m이다. 동부와 남부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회령시(會儜市)를 마주하고 있으며, 북부는 용정시와 연길시(延吉市), 서부로는 화룡시(和龍市)와 연접되어 있다.
중국 정부에서 이 산을 ‘천불지산 자연보호구(天佛指山自然保護區)’라고 명명하였는데 용정시의 백금향(白金鄕), 삼합진(三合鎭), 지신진(智新鎭) 구역(區域)이 여기에 해당된다.
천불지산은 다양한 동식물 자원으로 이름난 곳이다. 그렇기에 명산인 천불지산의 지리적 개황을 더 살펴보는 것도 적지 않은 흥미로운 일이다. 천불지산 자연보호구의 총면적은 77,317㏊[773,170, 000㎡]로, 핵심구(核心區)의 면적은 15,577㏊[155,770, 000㎡], 완충구(緩衝區)의 면적은 10,998㏊[109,980, 000㎡], 실험구(實驗區)의 면적은 48,742㏊[487,420, 000㎡]이고, 임업 용지의 면적은 77,317㏊[773,170, 000㎡]로 총 면적과 같다. 여기에 목재의 총축적량(總蓄積量)은 448.3㎥이며, 삼림 피복률(森林被覆率)은 88.3%에 달한다. 천불지산 자연보호구는 온대 대륙성 반습윤형 계절풍 기후대(溫帶大陸性半濕潤型季節風氣候帶)에 속하며 연간 평균 기온은 5.2℃, 연간 강수량은 550~700㎜, 무상기(無霜期)는 120일 좌우이다. 이 지역은 해발고가 170~1,331m이며, 주로 화강암(花崗巖)과 사암(砂巖), 혈암 풍화물(頁巖風化物)로 구성되었다. 토양 유형은 얇은 산성암림 회갈색 토양, 암갈색 토양, 백장토(白漿土)로 나뉜다. 바로 이런 생태 조건들이 이곳에 천연 송이버섯과 적송림의 생장에 최적의 조건을 마련해주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천불지산 자연보호구에는 수계가 발달하고 비가 충족히 내려 식물 자원(植物資源)이 풍부하다. 이곳에는 416종 80과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89종 36과의 조류, 12종의 파행류(爬行類)와 양서류(兩棲類)가 서식하고 있다. 이중에는 멸종위기에 직면한 중국 국가 1급 보호 식물인 야생 산삼과 중국 국가 2급 보호 식물인 송이[松栮, 松耳], 홍송(紅松), 자단목(紫檀木), 가래나무[楸子木, Juglans mandshurica], 야생콩, 물푸레나무(Fraxinus rhynchophylla), 황벽나무[黃蘗, Amur Corktree]가 들어있으며, 또 중국 국가 1급 보호 동물인 담비[山獺, Marten], ‘중국 국가 고급 보호 동물’인 검은 곰, 삵, 원앙새(mandarin duck), 노란조롱이 등도 서식하고 있다.
한편 천불지산은 여러 강의 발원지로서의 중요성도 갖고 있다. 백두산(白頭山)이 송화강(松花江), 압록강(鴨綠江), 두만강 등 3대 강을 배출한다면, 수목이 울창하고 동식물이 풍부한 천불지산은 삼합진의 청천하(淸泉河), 백금향의 대림하(沙金河), 지신진(智新鎭)의 육도하(六道河) 등 3하의 발원지가 되고 있다.
천불지산은 그 이름부터 기이하다. 천불지산의 명칭과 관련하여, 『용정 지명지(龍井地名志)』에는 ‘부처님이 강림하면서 점지한 산이라 하여 천불지산이라고 한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우물에서 용이 날아올랐다는 전설이 있는 곳인 용정, 이곳에 또 부처님이 현신한 천불지산이 있다니 용정은 그야말로 하늘이 점지한 땅이 아닌가?
천불지산 주봉(主峰)의 남쪽에는 남오봉산이 있고 북쪽에는 북오봉산이 있는데, 두 오봉산이 마치 거인의 양손같이 천불지산을 받들고 있는 형국이다. 불교 신자는 그 산세를 일러 연화대 모양으로 정좌한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형국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천불지산에는 예로부터 많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유명한 반일 지사로서 실존 인물이었던 용정대각사(大覺寺)의 주지 용성(龍城)이 이 산에 올라 부처님 현신(現身)을 친견(親見)했다고 한다. 용성은 1864년에 출생하여 1940년에 입적하신 분으로, 1927년경 용정에 와서 약 3~4년 동안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천불지산은 또한 조선 시대 최고의 풍수 대사인 무학 대사(無學大師)[1327~1405]가 다녀갔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연고들로 하여 천불지산은 불교의 성지로도 추앙받는 곳이기도 하다.
천불지산은 여러 가지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천연 보물고(天然寶物庫)이다. 천불지산에는 세간에 널리 알려진 세 가지 보물이 있는데, 바로 송이버섯, 취나물과 산천어(山川魚)이다.
『서유기(西遊記)』를 보면 당승(唐僧)이 서천(西天)으로 불경을 취하러 가는 도중 3천년 만에 열리는 천도 복숭아와 송이버섯을 먹었다는 묘사가 있다. 아마도 옛적부터 송이버섯은 명물로 알려졌던 모양이다. 자연산 송이버섯은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재배가 불가능한데, 그 독특한 맛과 향, 그리고 각종 암증을 예방하고 치유한다는 약효로 하여 한국, 일본 등지에서도 매우 선호되고 있다. 이곳에서 해마다 약 40톤의 송이버섯을 출하하는데, 이 송이버섯은 중국의 서장(西藏), 사천(四川) 변계 지대에서 출하되는 송이보다 품질이 더 좋은 상등으로 공인받아 더 인기가 높다. 이에 중국 국가 임업부와 환경보호부에서는 천불지산을 ‘국가급 송이버섯 자연보호구’로 명명하였다.
한편 용정시 정부에서는 2008년부터 해마다 송이 문화 축제를 열고 있는데 한국강원도 양양에서도 참여한 바 있다. 용정을 비롯하여 현재 ‘대명동표(大明東標)’ 송이 계열 제품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미 중국 국가 공상 총국(國家工商總局)의 비준을 거치고 등록되어 있는 상황이다.
자연산 송이버섯 외에도 천불지산의 명물로 취나물을 들 수 있다. 천불지산에서 많이 나는 취나물은 맛이 씁쓸하면서도 향긋하다. 취나물은 경상적으로 먹거나 그 뿌리를 달여 먹으면 위장병에는 물론 위암에도 효과가 좋다고 하여 건강 식품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그밖에 천불지산의 차가운 1급수에서 생장하고 있는 산천어를 빼놓을 수 없다. 천불지산의 산천어는 붉은 몸뚱아리로 잔등의 여기저기에 검은 점들이 박혀있다. 고기 맛이 삼삼하면서도 쫄깃쫄깃하여 양식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일품이다.
이러한 동식물 자원 외에도 천불지산은 자연 생태 관광지로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천불지산은 삼림욕을 하고 자연 생태 관광을 할 수 있는 천혜의 명승지이다. 이곳의 풍부한 삼림은 소기후를 조절하고 공기와 물을 정화하여 인간에게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고 있다. 삼림을 찾아 삼림욕을 하는 것은 신체를 단련하고 정신을 맑게 하며 장수하는 데 필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천불지산의 삼림 속에는 녹색식용식물, 약재, 식용균(食用菌) 등이 대량 분포되어 있다. 따라서 천불지산은 대자연의 미적 향수를 만끽하고 진귀한 식물을 맛보면서 자연 지식을 습득하게 해주는 훌륭한 배움터가 되어주고 있다.
천불지산은 연변의 여러 민족들의 아름다운 전설과 피눈물의 수난사, 불요불굴(不撓不屈)의 투쟁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역사의 산이기도 하다. 산천이 수려하고 물산이 풍족한 천불지산은 수많은 전설도 남몰래 품고 있다.
천불지산 전설, 불교 성지 전설, 송이버섯 전설, 오봉산 전설, 한왕산(韓王山) 전설, 현암(玄岩) 바위 전설 등이 그것이다. 이런 전설들은 산천 경계의 흠상과 더불어 관광객들에게 지식과 지혜의 날개를 달아준다.
천불지산에는 한민족이 쪽박차고 두만강을 건너온 이주 역사의 발자취와 고난의 개척사가 새겨져있다. 천불지산의 주봉 동북쪽의 한 자락인 오랑캐령이 바로 그 현장이다. 오랑캐령은 일명 해관령(海關領)이라고 불리고 있다.
1915년에 오랑캐령에 해관이 세워지면서 그렇게 불리게 시작했다. 그 옛날 회령에서 두만강을 건넌 조선 이주민들은 아흔 아홉 굽이가 되는 오랑캐령을 에돌면서 해관령에 올라 을미대에 이룬 촌 부락에서 하루를 묵었고, 이어 달라자[大拉子]에 이르러 용정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1930년대의 저명한 소설가 최서해(崔曙海)의 소설 『탈출기』에도 오랑캐령을 넘던 그런 피눈물의 장면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육도하에 깃든 사연들을 보면, 천불지산이 중국 조선 민족의 문화 발상지이자 일제와 피흘려 싸워온 처절한 혁명 투쟁사가 아로새겨진 곳임을 알 수 있다.
용정시 시가지에서 해란강과 합류하는 육도하는 그 발원지가 바로 천불지산에 이른다. 천불지산 자락의 허망채골, 오봉산 골짜기, 그리고 오랑캐령에서 생긴 물이 화룡현 소재지였던 달라자에서 합류하여 하나의 강인 육도하를 이루는 것이다.
총 길이가 45.5㎞나 되는 육도하 양안은 자고로 인재가 많이 나기로 유명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김약연(金躍淵), 이상설(李相卨), 주덕해(朱德海), 윤동주(尹東柱), 송몽규(宋夢奎), 김창걸(金昌傑) 등의 무수한 인재들이 한 시대를 풍미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바로 이 육도하 ‘개천’에서 난 용들이다.
육도하 기슭에 자리 잡은 용정에는 이상설이 1906년에 중국 조선인 첫 근대 학교인 서전 서숙(瑞甸書塾)을 세웠다. 1908년에는 김약연이 명동학교(明東學校)를 세웠고, 이를 토대로 1911년에 이르면 명동촌에서는 이미 완전한 민족 교육 체계를 세우고 수많은 반일 지사들과 독립운동가, 교육자들을 양성하고 있었다. 간민회(墾民會) 회장을 맡았던 김약연은 용정 3·13 반일 운동 등을 일으킨 조선 민족의 저명한 교육가이며 독립운동가였다. 하얼빈 기차역에서 일본 역적의 괴수인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쏴 죽인 안중근도 문암동(門巖洞) 만진기(滿鎭基)에서 사격 연습을 했다.
육도하 양안에는 명동학교, 윤동주 생가, 명동 교회 유적지, 15만원 탈취 의거 유적지(15萬圓奪取義擧遺蹟地), 5·30 폭동 지휘부 유적지(5·30 暴動指揮部 遺蹟地), 주덕해의 옛 집터, 3·13 반일 의사릉(3·13反日義士陵), 김창걸 문학비(金昌傑文學碑), 비암산(琵岩山)과 용주사 유적지(龍珠寺遺蹟地) 등이 위치하고 있다.
천불지산에는 항일 전쟁 시기의 로룡팔, 곤쓰레산 등 3개의 항일 연군 전적지와 유적지가 적지 않게 있다. 한 예로, 항일 투사들의 넋이 잠든 장풍동(長豊洞) 마을이 있다. 지난 세기 20년대에 독수리라는 별호를 가진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은 18세 처녀가 장풍동 마을에서 항일 선전을 하였다. 그런데 일본인 토벌대가 돌연 습격을 하는 과정에서 그 처녀는 등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그로 인해 몸 밖으로 내장이 쏟아져 나오자 그녀는 내장을 치맛자락에 싸안고 힘겹게 일어서서는 마지막 힘을 다해 “민중의 기 붉은 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라고 「적기가」를 부르다 희생된 사례가 있다.
그밖에도 경신년 대토벌 때에는 악귀 같은 일본인들이 9명의 항일 지사를 붙잡아 집안에 거둬 넣고 문에 못을 치고는 불을 질러 산채로 죽이는 만행을 저지른 일도 있었다. 그 중에는 아이를 업은 여인도 있었다. 집에 불길이 치솟자 여인은 행여나 하여 그 아이를 소똥을 쳐내는 마구간 구멍 밑으로 밀어 넣었다. 마침 억지로 끌려와서 그 참경을 보던 마을 사람 중 누군가가 그 아이를 구해내 아이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천불지산은 조선민족의 영웅들이 나고 활동한 곳으로 연변 조선족 역사의 정기가 서린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상서로운 천불지산의 영험한 힘과 기운이 늘 연변 조선족 사회를 덮고, 그 기운을 받으며 가장 우수한 민족적 역량을 계속해서 발휘해 나가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