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랑산성

한자 娘娘山城
중문 丹东娘娘山城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요령성 안산시 수암만족자치현 양가보향 낭낭성촌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산성
관련인물 연개소문|연개소영
크기 둘레 3,500m|외성 둘레 2,300m
조성|건립 시기/일시 고구려
현 소재지 요령성 수암현 양가보향 낭낭성촌
원소재지 요령성 수암현 양가보향 낭낭성촌
정의

요령성 수암현 양가보향 낭랑성촌에 있는 고구려 산성.

건립 경위

낭랑산성의 남쪽에는 신개령하(新開岭河)가 흐르며, 산 정상에서 사방을 조감할 수 있고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에 군사적 요충지에 만들어졌다. 성안에는 1839년에 조성된 작은 낭랑묘(娘娘廟)가 있어 낭랑산성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형태

낭랑산성의 둘레는 약 3,500m 이상으로 내외성 구조이다. 외성은 성 둘레가 약 2,300m이다. 문은 동·서·남·북 4곳에 문이 있고 동쪽 골짜기 문이 정문이며 성벽 동남쪽 모서리에 치가 3개 있다.

낭랑산성은 해성과 봉성 그리고 압록강 하구의 모든 면에서 중간 부분에 있어 이들 모두와 연계하고 이들 성을 통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낭랑산성의 성벽은 산 능선을 따라 다듬어진 돌로 쌓은 석축(石築) 산성인데, 문화 대혁명 당시 많이 파괴되었으나 서쪽의 산 능선 부근 약 300m가 비교적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 높이는 대략 3∼9m, 너비는 상단부가 2.5∼3m 정도이다.

성안에는 저수지가 있고 성의 서북쪽에는 3단으로 축조한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지금은 상당히 무너진 상태이다. 또 성 남쪽의 험준한 곳에 연개소문(淵蓋蘇文)의 동생 연개소영(淵蓋蘇英)의 무덤으로 전하는 대형 분묘 유적이 있는데, 만주국 때 일본인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의의와 평가

낭랑산성은 규모나 지리적 위치로 보아 고구려 당시에도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을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요동 반도 남단 일대에 있었던 고구려적리성(積利城)으로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당서』
  • 요령성 문물 관리 위원회, 『遼寧文物古蹟大觀』요령 대학 출판사, 1994
  • 田中俊明·東潮, 『高句麗の歷史と遺蹟』(中央公論社,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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