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아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물품·도구/물품·도구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정의

물의 힘으로 공이를 오르내려 곡식을 찧는 방아.

개설

물방아는 크게 물레방아와 통 방아로 구분할 수 있다. 물레방아라는 말은 물레와 방아의 복합어이다. 물이 비교적 풍부한 산간 마을에는 물레방아가 하나씩 있어서 마을 공동으로 활용했다. 작동 원리는 바퀴를 가로지른 방아굴대 양쪽에 달린 눌림대가 바퀴가 돌아감에 따라 방앗간에 장치된 방아의 한쪽 끝인 살개목을 지긋이 눌러 방아 공이를 들어 올린다. 따라서 물레가 1바퀴 돌 때 방앗간의 방아 공이가 1번 찧게 되는데, 통상 방아 2개를 나란히 놓았기 때문에 2개의 방아 공이가 오르내리게 된다.

통방아는 굵고 긴 통나무의 한 끝을 소구유처럼 길게 파서 물받이로 만들고, 다른 끝에는 구멍을 뚫고 공이를 박았다. 수로(水路)에서 쏟아지는 물이 물받이에 가득차면 물의 무게 때문에 물받이 쪽이 주저앉고 공이 쪽은 들려 올라간다. 이 때 물받이에 담겼던 물이 쏟아지면서 공이가 떨어진다. 또 공이가 오르내릴 때 쌀개를 고정시키는 두 기둥에 몸채가 닿지 않도록 가운데를 양쪽에서 발라낸다. 확이 박힌 부분에는 긴 작대기 서너 개를 원뿔 모양으로 벌려 세우고, 위를 덮어 방앗간으로 삼는다. 주로 벼·보리·기장·조·옥수수 따위의 곡물을 찧는 데 사용한다. 속도가 매우 느려서 한 나절에 한 번쯤 곡식을 바꾸어 넣을 때 외에는 지켜보고 있을 필요가 없다.

『해동농서(海東農書)』에는 ‘물방아[水碓]’로,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는 ‘물방아[槽碓]’로 표기되었다. 한자 표현상 ‘水碓’는 물레방아를, ‘槽碓’는 통방아를 가리킨다. 물레방아와 통방아는 물의 힘을 이용하는 점에서는 같으나 통방아는 물레방아에 비해 수량이 적은 데 설치한다.

연원 및 변천

길림성(吉林省) 용정시(龍井市) 장재촌(長財村)의 물레방아는 각 소대마다 1대씩 모두 4대를 냇가에 세웠다. 피대를 메워서 동력을 전달하였고, 공이 주변에는 지붕을 만들어 방앗간으로 사용하였다. 지붕을 덮는 것을 “갓을 씌웠다”라고 한다. 물레방아는 많은 곡물의 방아를 찧는 데 사용하였고, 적은 양의 곡물은 집집마다 갖춘 디딜방아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방아는 40년 전에 사라졌다.

형태

물레방아는 크게 물레 부분과 방아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물레방아는 물레 좌우에 눌림대인 십자목(十字木)을 설치하고, 방아 공이는 방앗간 내에 설치한다. 물레의 회전축인 방형(方形)의 굴대는 소나무, 십자목과 방아는 참나무 등으로 만든다. 한국의 정선 백전 물레방아의 크기는 물레가 직경 250㎝, 폭 67㎝이고, 방아채가 길이 440㎝, 방아공이가 146㎝ 이다.

통 방아의 경우, 몸체는 소나무로, 공이는 박달나무와 같이 단단한 목재를 쓰며, 끝에는 둥근 쇠통을 끼우기도 한다. 통방아의 길이는 대략 550㎝ 정도이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물레 방앗간은 남녀의 사랑을 나누는 공간으로 인식되고, 방아의 상하 운동은 남녀의 성행위에 빗대어 묘사된다. 통방아는 방아를 찧는 모습이 마치 벼락처럼 강하여 ‘벼락 방아’라고도 불린다.

참고문헌
  • 김광언, 『한국의 농기구』,(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69)
  • 김광언, 『한국 농기구고(韓國 農器具攷)』,(한국 농촌 경제 연구원, 1986)
  • 김광언, 「농기구」,(『중국 길림성 한인동포의 생활문화』, 국립민속박물관, 1996)
  • 박호석·안승모, 『한국의 농기구』(어문각,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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