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의 언어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언어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카자흐스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정의

다민족 다언어 국가인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어를 비롯한 카자흐어와 러시아어 등의 언어 분포 및 사용 현황.

개설

카자흐스탄은 카자흐인, 러시아인을 비롯하여 140여 개의 소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다언어 국가이다. 카자흐스탄의 모든 언어를 계통 관계에 따라 분류하면 튀르크어군, 슬라브어군, 기타 언어군으로 나눌 수 있다. 튀르크어군에는 카자흐어, 우즈벡어, 터키어 등 26개 언어가 포함된다. 1991년 12월 16일 소비에트연방에서 독립한 후 자국민의 통합 과정에서 카자흐어를 국어로 정착하고, 러시아어의 영향력을 줄이며 영어의 사용 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삼중 언어 정책’을 표방하였다.

카자흐스탄의 언어 정책

카자흐스탄은 카자흐인, 러시아인을 비롯하여 140여 개의 소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다언어 국가이다. 1991년 12월 16일 소비에트연방에서 독립한 후 통계에 따르면, 자민족인 카자흐인이 전 국민의 41.9%, 러시아인이 37%를 차지한다. 카자흐스탄은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한 13개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자민족 인구수가 전 국민의 절반을 넘지 못하였다. 따라서 독립 이후 카자흐스탄 정부는 자국민의 통합 과정에서 카자흐어를 국가어로 정착하고 러시아어의 영향력을 줄이려고 했지만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민 가운데 러시아어만 사용하는 인구가 많고 러시아어가 소수 민족의 의사소통어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국가어인 카자흐어가 국민어의 기능보다는 제한적 범위의 기능만 수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카자흐스탄은 독립한 후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즈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과 달리 시장 개혁에서는 적극적 변화 전략을 표방했지만, 언어 정책에서는 러시아어의 위상과 역할을 일정 부분 인정하는 ‘온건주의 노선’을 취했다. 현재 카자흐스탄 정부의 기본적인 언어 정책은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국가어인 카자흐어의 위상을 격상한다. 둘째, 러시아어의 현실적 영향력을 고려하여 러시아어를 민족 간 의사소통어로 지정하여 공용어의 위상을 부여한다. 셋째, 자국 내 모든 소수 민족의 언어를 존중한다. 또 글로벌화라는 시대적 요청과 경제 발전을 위해 국민들에게 영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카자흐스탄의 언어 정책은 삼중 언어 정책이다.

카자흐스탄의 언어 현황

카자흐스탄에서 사용되는 모든 언어를 계통 관계에 따라 분류하면 튀르크어군, 슬라브어군, 기타 언어군으로 나눌 수 있다. 튀르크어군에는 카자흐어, 우즈베크어, 터키어 등 26개 언어가 포함된다.

카자흐어의 계통 및 문자

언어 계통적으로 알타이어족 튀르크어파 킵차크 분파 아랄카스피어 그룹에 속하며 중국의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 몽골, 러시아, 중앙아시아, 우크라이나, 터키,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에도 사용자가 분포해 있다. 몽골어와 아랍어, 페르시아어에서 차용된 단어가 많은데 아랍어는 이슬람과 코란을 통해 차용되었지만, 일반적으로 페르시아어를 매개로 한다. 최근에는 러시아어와 중국어, 특히 러시아어의 차용어가 많이 쓰인다. 1929년 전까지는 아랍 문자를 쓰다가 1929년에 라틴 문자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라틴 알파벳이 카자흐어의 발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러시아어 차용어를 표기하는 데 불편하다는 이유로 1940년에 키릴 문자가 채택되어 현재까지 쓰인다. 현재 중국 신장 일리 카자흐 자치주에서는 아랍 문자, 카자흐스탄에서는 키릴 문자를 사용한다. 그런데 2017년 4월 12일 카자흐스탄 정부는 카자흐어의 문자 체계를 2025년까지 로마자로 바꾸겠다고 발표하면서 문자 개혁이 시작되었다.

카자흐스탄에서 카자흐어의 위상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된 후 다민족 다언어 국가인 카자흐스탄은 독립 주권 국가로서 위상 제고, 국가 안정성 도모, 자국 여러 민족의 통합을 위해 자민족어인 카자흐어를 국가어로 채택하여 국가어로서 지위를 확립하고자 노력하였다. 카자흐어는 현재 헌법에 명시된 카자흐스탄의 국가어이다. 그동안 꾸준한 국가의 언어 정책, 인구 유입에 따른 카자흐인의 증가 등으로 카자흐어에 대한 긍정적이고 우호적 환경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국가어로서 지위를 확고히 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카자흐스탄 정부는 사회 전 부문에서 카자흐어의 의사소통 기능을 강화하려고 강력하고 적극적인 정책을 채택하였다. 대표적으로 헌법에 대통령과 국회 의장 등 상징적 국가 고위직은 카자흐어를 능숙히 구사해야 한다고 명시하였다. 또 카자흐어를 배우는 외국인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국민의 카자흐어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카자흐어 능력 시험인 카즈테스트를 개발하여 시행하고 있다. 2000년 이후에는 공공 단체 및 사회단체의 정부 문서 작업을 카자흐어로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어

러시아어는 1993년 카자흐스탄 첫 헌법에서 카자흐스탄 내 민족 간 의사소통어로서 지위를 부여하였다. 1995년 개정된 헌법 및 1997년의 카자흐스탄 언어 법에서는 국가 기관과 지역 자치 조직에서 카자흐어와 병용되는 공용어라는 법적 지위를 부여받았다. 러시아어의 법적 지위는 국어가 아니라 소수 민족어 가운데 하나인 공용어지만, 사용 인구 및 언어 기능에서는 국가어인 카자흐어의 지위를 실질적으로 위협할 만큼 여전히 영향력이 있다. 하지만 카자흐스탄 정부의 언어 정책 및 다양한 분야의 카자흐화 정책, 그리고 카자흐인이 중심이 된 정치 세력의 강제적 조치로 러시아인의 탈카자흐스탄 현상이 이어지면서 러시아인이 수적으로 감소하였다. 따라서 러시아어의 사용 영역은 점차 축소될 것이다. 그럼에도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어는 당분간 의사소통의 영역, 과학 기술 및 학문 분야, 대중 매체 인터넷 영역 등에서 우월적 지위와 영향력을 유지할 것이다.

영어

카자흐스탄에서 영어는 국가어인 카자흐어나 공용어인 러시아어에 비해 아직 법적으로 보장된 위상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글로벌화에 부응하려는 도구로 다른 소수 민족어보다는 정책적으로 우선순위를 점하는 언어이다. 현재 카자흐스탄의 교육 현장이나 언론 보도를 통해 영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머지않은 장래에 영어가 러시아어와는 별개로 카자흐스탄의 새로운 국제적 의사소통어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카자흐스탄의 한국어 보급 현황

1937년 재러 한인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이후 민족어로서 한국어의 기능은 현저하게 축소되었다. 1938년 1월 24일 전 연방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결정으로 한인 학교는 다른 소수 민족 학교와 마찬가지로 소비에트연방의 일반 학교로 개편되었고 교육 과정도 러시아어로 진행되었다. 같은 시기 카자흐스탄의 한인 사범 학교가 폐쇄되었고 크질오르다 한인 사범 학교 교육은 러시아어로 대체되었다. 1950년대 말 한인 밀집 지역에서 한국어 교육을 부활, 발전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고려인 분포 상황의 변화, 한국어와 러시아어를 동일한 수준으로 구사할 수 있고 이에 대한 교수법을 갖춘 교사의 부족, 해당 지역 행정 기관의 무책임과 소극성, 학습 프로그램·교재·사전의 심각한 부족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한국어는 카자흐스탄 고려인의 문화생활에서 일정한 사회적 기능을 담당했다. 알마티에서는 한국어로 『고려신문』[구 『레닌기치』]이 발행되었으며, 한인 음악 연극 극장이 운영되고 있고 카자흐스탄 작가동맹 산하에 한인 산문 작가와 시인 분과가 조직되었다. 카자흐스탄의 연성룡, 차장춘, 한진, 김준, 김광헌, 명동욱, 박일, 차영 같은 작가는 한국어로 작품을 썼으며 1988년 자주시 출판사에서는 소비에트 한인들의 삶을 보여 주는 한인 작가 9명의 중편 소설과 동화집을 한국어로 출판했다. 1991년 카자흐스탄이 독립한 후에 알마티 한국교육원이 설립되어 현재까지도 한국어, 한국 문화 보급을 위한 교육 사업, 교육 지원 사업, 교육 상담 사업 등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 알마티 한국교육원에서는 1,000여 명의 현지 학생이 한국어 강좌에 등록하여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12개의 한글 학교가 있고 49개의 카자흐 초중등학교에 한국어 교육 과정이 개설되었다. 또한 6개의 카자흐스탄 대학에 한국어 학과가 설치되었고, 9개 대학이 한국어 과정을 제2 전공으로 운영한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파견하는 봉사 요원은 대부분 각 대학에서 한국어 교육을 맡고 있다. 또 세종대학교 국제 대학원 한국어 과정에서는 카자흐스탄 유학원과 협력하여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에 세종어학원을 설립하여 2017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어 교육을 하고 있다. 이처럼 카자흐스탄에 한국어를 전파, 발전시키려는 조직적, 개인적 시도가 이어졌기 때문에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어는 명맥을 이어 갈 것이다.

카자흐스탄 한인의 한국어 사용 실태

1937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후 고려인의 언어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러시아어의 간섭 현상이다. 특히 1960년대부터 고려인의 언어생활에서 이중 언어 현상이 뚜렷이 감지되었다. 1970년대 이후에는 도시 거주 고려인들 사이에서 언어 동화 현상이 나타났다. 1950~1970년대 카자흐스탄 고려인의 언어생활에서는 러시아어의 확산과 한국어 보존이라는 양면성이 특징으로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간주하는 고려인의 수가 양적, 질적으로 증가했다. 1979년 카자흐스탄에서 전체 고려인의 86.5%인 44,651명이 러시아어를 구사했으며 한국어는 구어로만 기능했다. 특히 도시 고려인의 러시아어 구사 수준이 점점 향상되었는데, 이는 남성들의 직업 및 사회 정치 활동과도 관련 있다. 바로 이 분야에서 민족 간 통용어로서 러시아어가 좀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한 후 자원 개발과 건설 붐으로 한국 기업의 카자흐스탄 진출이 증가하면서 한인뿐만 아니라 카자흐인, 러시아인 사이에도 한국어를 배우려는 열기가 고조되었다. 특히 한류의 확산이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어 열기를 높이는 데 일조하였다. 그럼에도 오늘날 카자흐스탄의 젊은 고려인에게 한국어는 카자흐어, 러시아어에 이어 제3의 언어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한국어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정책이 시급하다. 또 실력 있는 교사 확보, 현지 실정에 맞는 교재 개발 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참고문헌
  • 김일수 외, 『중앙아시아의 거인 카자흐스탄』(궁리, 2008)
  • 김 게르만, 「카자흐스탄 한인사회의 민속과 문화」(『역사민속학』4, 한국역사민속학회, 1994)
  • 김 게르만, 「카자흐스탄 한인의 사회와 문화의 발전」(『비교문화연구』2,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1995)
  • 손영훈, 「카자흐스탄의 민족 통합 과정에서 카자흐어의 역할」(『중동연구』27-3,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동연구소, 2008)
  • 정은미, 「카자흐스탄 언어 정책의 현황과 미래: 삼중 언어 정책을 중심으로」(『중동연구』33-2,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동연구소, 2014)
  • OFFICIAL SITE OF THE PRESIDENT OF THE REPUBLIC OF KAZAKHSTAN(http://www.akorda.kz/en/category/kazakhs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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