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문화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CIS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정의

1860년대 이래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과 CIS 거주 한인[고려인] 사이에 널리 보급된 농작물과 재배 문화.

개설

재러 한인[고려인]은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과 CIS 지역에서 농업 경제의 기초 확립과 발전에 큰 축을 담당해 왔다. 가장 두드러진 역할을 한 분야는 벼농사이며 이외에 채소 농사, 목화 농사, 양잠업에서 역할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1988년 이후 고려인은 이미 도시나 도시화한 농촌에 거주하여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극소수가 되었으며, 도시에서 출생한 3세대, 4세대 고려인은 더 이상 농사에 대한 경험이 없다.

벼농사와 채소 농사

소비에트 연방과 CIS에 거주하는 고려인의 대다수는 농업에 종사했으며 해당 지역의 벼농사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과거 소비에트 연방의 한인들이 벼농사를 시작한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1860년 말에 시작하여 1907년경 재배에 성공하였고, 1917년 남우수리스크, 포시예트, 수찬스크 등 한인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확대되었다. 1922년 내전이 끝난 이후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가 본격적으로 가동하면서 집단화 정책과 더불어 극동 전역에 광범위하게 퍼져 나갔으며 재러 한인 벼 영농 콜호즈들이 조직되었다.

이미 강제 이주 전 러시아 연해주의 한카 호수 인근, 호롤, 스파스크, 그로데코보, 슈마콥나 남부 지대, 아무르강을 따라 러시아 아무르주 블라고베셴스크와 제야강까지 극동 전역에서 벼농사를 정착했으며 콩, 옥수수, 수수, 피, 귀리 등의 농작물 재배도 성행했다. 볍씨는 마을에서 “재간 있는 사람”이 뿌리는데, 너무 일찍 뿌리면 씨가 곯아 농사를 망칠 수 있기 때문에 그해 일기에 맞춰 볍씨 뿌리는 시기를 정한다. 볍씨를 뿌리고 1주일이 지나면 싹과 풀이 돋아나는데 풀은 손으로 일일이, 벼 이삭이 함께 뽑히지 않도록 살살 뽑는다. 6월 15일을 전후해 본격적으로 지심을 매는데 보통 3명이 짝을 이루어 2, 3번 고쳐 맨다. 지심을 맨 후 일손을 잠시 놓았다 9월에 수확한다. 볏단을 엮어 집마다 마당에 쌓아 놓는데 이를 흔히 “무덤 해 놓는다.”라고 한다. 추위가 빨리 찾아와 쌓아 놓은 볏단이 얼어 버리면 집 안으로 들여와 말린다. 오늘날 벼농사 전통은 카라칼파크스탄 자치공화국, 호레즘, 우슈토베 등의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일부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벼농사 이외에 재러 한인 농사 문화의 특징으로는 텃밭을 이용한 식용 채소 재배였다. 재러 한인들은 주로 양배추, 무, 배추, 가지, 오이, 감자, 마늘, 양, 당근, 고추 등을 재배했는데 판매용이 아니라 식용이었다. 이외 참외, 수박, 담배를 재배하기도 한다. 한인들은 오랫동안 전해오는 전통적인 농사 방법을 고수했다. 호미, 곡괭이, 쟁기 등의 도구들을 사용했고 농사일에 소를 이용했으며 당나귀를 이용해 연자방아를 돌렸다. 하지만 현대에는 전반적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고려인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양잠업

한인들이 러시아에 새롭게 소개한 것은 농작물만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러시아 극동 지역에 양잠업을 도입한 사람이 재러 한인들이다. 극동의 시넬리니코보 마을에서는 1900년부터 뽕나무를 심었으며 누에고치를 기르기 시작했다. 양잠업에 종사하는 재러 한인의 수는 꾸준히 증가했는데 러시아 극동 지역 중 남쪽에 위치한 니콜스크우수리스크 군과 포시예트 지역에서 성행했다. 1926년에는 ‘붉은 동쪽’이라는 양잠업 영농 조합이 조직되기도 한다. 현재는 농업에 종사하는 고려인이 절대적으로 소수인 만큼 양잠업에 종사하는 고려인도 많지 않다.

목화 농업

소비에트 연방과 CIS 한인 농사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야가 목화 농업이다. 특히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시에 위치한 폴리트옷젤 콜호즈의 고려인은 대부분 목화 재배업에 종사했으며 현재도 목화 재배는 지속되고 있다. 목화 농사는 1965년부터 소비에트 연방 정부의 주관으로 시작했는데, 고려인들은 흔히 ‘목화질’이라고 불렀다. 고려인의 목화 재배 방법은 다음과 같다. 전년도에 거둔 목화를 공장에서 씨만 따로 모아 파종 시기에 맞춰 전달한다. 일반적인 파종 시기는 4월 초이다. 전수 수작업으로 씨를 심었을 때에는 목화밭의 밭고랑 사이가 60~70㎝ 간격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씨에루까’라는 기계가 있어 그 기계의 바퀴 간격에 맞춰 45㎝ 간격을 유지한다. 1㏊에 보통 백만 개의 씨앗을 심는다. 1주일 후면 새싹이 돋는데, 그때 후치질을 해 땅을 부드럽게 고른다. 이후 잎사귀가 4, 5개 정도 나면 도랑의 물을 댄다. 그 전에 물을 대면 뿌리가 썩을 수 있다. 6월 초부터 목화가 피기 시작하는데, 그러면 약을 친다. 7월이면 만개하는데 한 줄기에 7, 8개 송이가 열린다. 8월에는 목화가 더 자라지 않도록 윗가지를 모두 꺾어 버린다. 10월 전에 ‘감바이’라는 기계를 몰아 2, 3차례에 걸쳐 수확한다. 이를 펼쳐 볕에 말린다. 모든 손질이 끝나면 콜호즈에 전달한다.

축산업

고려인들은 러시아인과 달리 양은 키우지 않고 돼지 사육에는 적극적이었다. 돼지 사육의 목적은 판매가 아니라 식용이었다. 고려인들이 잔치나 명절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식재료의 하나가 돼지고기이기 때문이다. 고려인의 축산법은 러시아인들의 축산법과는 확연히 달랐다. 방목을 하지 않았으며 말뚝이나 기둥에 매어 놓고 길렀는데, 새끼 돼지까지도 짧은 밧줄에 매어 놓고 길렀다. 가축 우리의 구조는 고려인 거주 가옥과 같은 구조이며 종이 창문까지 갖추었다.

고본질

현재 중앙아시아 고려인 사회에는 일반적인 영농 방식과는 다른, 고려인만의 독특한 ‘고본질’이라는 영농 방식이 존재한다. 고본질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독립 채산제 영농 방식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계획 경제 체제 내에서 발생했다. 고본질은 집단적 생산 체제라는 소비에트 연방의 영농 방식과는 양립할 수 없음에도 독자적 영역을 확보하면서 발전하였다. 1985년 고르바초프 집권 이후 농업 집단 청부제와 토지 임대제가 합법화되면서 고본질도 합법화되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 해체 이후에도 고본질은 고려인 사회에서 일정한 사회 경제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현실성을 더해가고 있다. 고본질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 생산 주체가 1년 중 일정한 기간, 대개는 3월부터 10월 근거리든 원거리든 현 거주지를 떠나 생산 현장에서 생활하며 영농을 수행한다. 둘째, 개인적으로 운용되는 영농 형태가 아니라 소공동체가 중심이 된 영농 형태이다. 셋째, 이동 임대 영농의 특징이 있는데, 이는 소비에트 연방과 현재 CIS 지역의 생산 및 판매 조건 등과 같은 사회 경제 구조와 관련이 있다. 넷째, 영농 주체는 과거나 현재나 고려인이다.

참고문헌
  • 백태현·이 애리아,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고본질」(『비교문화연구』6-1,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2000)
  • 임영상, 「우즈베키스탄 고려인의 전통 명절과 문화 콘텐츠: '단오'축제를 중심으로」(『재외한인연구』20, 재외한인학회, 2009)
  • 김혜진, 「러시아 사료로 본 한인 이주민들의 생활: 19세기 후반~20세기 초 자료를 중심으로」(『민족학연구』9, 한국민족학회, 2010)
  • 안상경·이병조, 「독립국가연합 고려인 공동체의 한민족 민속문화 전승 연구: 우즈베키스탄 타시켄트 주 고려인 콜호즈의 민속 문화를 중심으로」(『슬라브연구』29-1,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연구소, 2013)
  • Ким Сын-Хва, 『Очерки по истории советских корейцев』(Алма-Ата: Наука, 1965)
  • Петров А. И., 『Корейская диаспора на Дальнем Востоке России. 60-90-е годы XIX века』(Владивосток,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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