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놀애들을 개혁하자」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894년 8월 10일
저자 몰년 시기/일시 1938년 5월 11일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935년 7월 30일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935년 8월 3일
성격 문학 평론
작가 조명희
정의

1935년 7월과 8월 러시아 연해주에서 조명희『선봉』 에 두 번에 걸쳐 발표한 문학 평론.

개설

조명희가 1935년 7월과 8월 『선봉』 신문에 두 번에 걸쳐 발표했던 문학 평론으로서, 사회주의적 내용에 민족적 형식을 결합한 작품을 창작할 것을 주창하였다. 「조선의 놀애들을 개혁하자」(1, 2)는 기존의 도식적이고 기계적인 3음보나 4음보의 정형적 형식이 아닌 소련의 사회주의 현실과 배경에 어울리게 정형적 형식을 바꾸어 무산 계급의 감정에 맞게 새로운 형식으로 작품을 창작하는 것이 핵심이다. 「조선의 놀애들을 개혁하자」는 소련에서의 조명희의 문학관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평론이다. 조명희는 이미 사회주의적 사상과 형식을 작품 창작의 주요한 방법과 수단으로 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명희는 1894년 8월 10일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면 벽암리 수암 부락에서 양주가 본관인 아버지 조병행과 어머니 연일 정씨 사이의 4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조명희는 민족 해방과 사회주의 국가 건설의 신념을 갖고 1928년 소련으로 망명하였다. 조명희는 1937년 9월 17일경 자택에서 일본 스파이라는 죄명으로 소비에트 연방 비밀 경찰에게 잡혀갔다. 그 후 취조와 재판도 없이 총살 선고를 받고 1938년 5월 11일에 처형되었다.

구성

1935년 7월 30일에 발표한 「조선의 놀애들을 개혁하자」(1)과 1935년 8월 3일에 발표한 「조선의 놀애들을 개혁하자」(2)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조선의 놀애들을 개혁하자」에서 조명희는 시를 창작할 때 “사회주의적 내용에 민족적 형식”을 갖춘 새로운 시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조선의 낡은 형식을 비판적으로 계승해야 하며, 무산 계급의 감정에 맞는 새로운 곡조의 형식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한다. 조명희가 언급하고 있는 ‘민족적 형식’이란 도식적인 3음보나 4음보의 ‘낡은 형식을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무산 계급의 감정에 맞는 새로운 형식을 이야기한다. 조명희는 조선의 재래 「수심가」, 「아리랑 타령」, 「애원성」, 「과부타령」 등은 “지배 계급이 피지배 계급의 반항의 정신, 의식을 마취시키고 말살시키려는 사상의 형틀로 준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조명희가 강조한 ‘민족적 형식’이란 조선의 민요나 가사 등을 지칭한다. 그리고 ‘무산 계급의 감정에 맞는 새로운 곡조의 형식’이란 ‘쾌활하고 율동적이며 즐겁고도 씩씩한 느낌을 주는 리듬’을 의미한다. 이러한 조건을 구비하여 시를 창작한 대표적인 실례로 조명희는 고려인 시인 연성용의 시 「씨를 활활 뿌려라」와 「진격 어선이 나아간다」를 들면서 매우 높이 평가하였다.

의의와 평가

「조선의 놀애들을 개혁하자」는 소련에서의 조명희의 문학관을 분명하게 확인해 주는 문학 평론이다. 조명희가 사회주의적 사상과 형식을 작품 창작의 주요한 방법과 수단으로 삼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조명희, 『낙동강(외)』(범우사, 2004)
  • 우정권, 『조명희와 『선봉』』(역락, 2005)
  • 김낙현, 「조명희 시 연구-구소련에서 발표한 시를 중심으로」(『우리문학연구』36, 우리문학회,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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