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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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카자흐스탄 알마티주 알마티시 |
시대 | 현대/현대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90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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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991년 |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990년 |
성격 | 중편 소설 |
작가 | 김기철 |
추석을 눈앞에 둔 제갑동 사람들은 풍년에 대한 기대로 평화로운 한때를 보낸다. 그런 이들에게 당으로부터 갑자기 하달된 강제 이주는 한마디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제갑동 사람들은 선조들의 피어린 투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스며든 정든 땅과 이별한 채 ‘죄없는 죄수’가 되어 짐짝처럼 실린 채 시르다리야(Сырдарья)강 하류 지방의 한 작은 정거장에 도착한다.
도착한 곳은 가시나무 관목숲과 모래뿐인 황무지였지만, 제갑동 사람들은 김두만을 중심으로 우등불[모닥불]을 지피고 황무지를 황금의 바다로 만들자고 결의한다. 김두만 일행은 당국의 비협조와 경험 부족, 질병 등 갖은 고난을 겪지만, 끝내 황무지를 황금의 바다로 일군다.
그러던 중 고려인들은 자신들의 처지가 ‘맨발에 가시덤불을 밝고 가는 고통이고 칼을 물고 모래불에서 뜀박질을 하는 것만큼이나 아슬아슬한 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대표적인 사건이 「이천만 동포」 노래 사건이었다. “이천만 동포야/ 일어나라, 일어나서/ 칼을 들고 총을 메고/ 나가 싸우자”[1990년 5월 17일]란 노래는 원동 고려인들의 애창곡으로써 레닌 탄생 36주년 기념일 때는 아이들이 「레닌 탄생가」와 함께 불러 상금까지 탔던 노래였다. 그러나 고려인들의 민족주의를 어떻게든 단속하려 했던 소련 당국은 아이들이 부른 이 노래를 가지고 두만을 향해 “꼴호스에서 왜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노래를 불러요.”([1990년 5월 18일]라고 문책 한 뒤 정치적 사건화한다. 비록 당원일지라도 “민족주의를 선전했다고 십 년을 받아”[1990년 5월 31일] 가는 세상이었고 수많은 이들이 바로 그 민족주의를 고취했다는 죄목으로 처형되던 시절이었기에 소련 당국의 이같은 태도는 고려인으로서는 매우 위협적인 조치였다. 하지만 이 모든 어려움도 고려인들의 성공을 향한 열망을 꺽을 수는 없었다.
결국 고려인들은 소련 당국이 자신들을 ‘중앙아시아 개척이란 큰 고기를 잡기 위한 미끼’와 같은 존재로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역경을 이겨냄으로써 “조선인 농부들은 미끼가 아니오 처녀지 개간의 창조적 힘”[1990년 5월 16일]이라는 것을 증명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주 초해」는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을 비판하는 동시에 성공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던 고려인들의 모습을 형상화함으로써, 소련 당국의 온갖 차별에도 불구하고 콜호즈의 영웅으로 우뚝 섰던 고려인들에 대한 자긍심을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