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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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주 |
시대 | 현대/현대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909년 8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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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2001년 1월 5일 |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938년 |
성격 | 시 |
작가 | 강태수 |
「밭 갈던 아씨에게」는 당시 스탈린 정권에서 금기시했던 강제 이주로 떠나온 고향 연해주를 그리워한 내용의 작품으로 취급되었다. 「밭 갈던 아씨에게」는 시적 화자가 밭 갈던 아가씨에게 연모의 감정을 느낀 것을 노래한 것이었지만, 「밭 갈던 아씨에게」로 인해 강태수는 필화 사건에 연루되어 소비에트 정부에 체포되어 20년 넘게 유형 생활을 하게 된다. 1909년 8월 26일 함경북도 이원군에서 출생한 강태수는 2001년 1월 5일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서 사망하였다. 강태수는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 소재 조선사범대학 재학 중 학교 벽보 신문에 「밭 갈던 아씨에게」를 발표하였다.
5연으로 구성된 서정시이다. 1연이 가장 긴 연으로 구성되었고, 나머지 4개의 연은 비교적 짧은 연으로 구성되었다.
「밭 갈던 아씨에게」에는 떠나왔던 연해주나 강제 이주에 관계된 직접적인 표현은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 마을 뒷산은 보이지 않는다”와 “동녘은 껌껌 나라”와 같은 시구가 떠나온 고향 연해주를 그리고 있다는 이유로 강태수는 소련 당국에 체포되었다. 「밭 갈던 아씨에게」는 시적 화자가 밭 갈던 아가씨에게 일종의 연모의 감정을 노래한 서정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시적 화자가 ‘밭 갈던 아씨’와 대화하는 대화체 형식과 과거에 대한 회상의 두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시「밭 갈던 아씨에게」는 고려인 문학 작품 중에서 최초로 필화 사건을 야기한 작품이다. 「밭 갈던 아씨에게」를 통해 스탈린 정권의 차별적인 민족 정책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스탈린 정권은 대소련 동화 정책을 강력하게 실시하여, 소수 민족이 ‘강제 이주’, ‘떠나온 고향 연해주’, ‘민족’ 등에 대해서 발설하는 그 자체를 금기시했다. 시 「밭 갈던 아씨에게」는 1937년 강제 이주 후 스탈린 정권이 창작의 자유을 엄격히 통제하고 구속했던 당시 소련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잘 보여 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