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海潮新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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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지역 | 러시아 연해주지방 |
시대 | 근대/개항기 |
창간 시기/일시 | 1908년 2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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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간|종간 시기/일시 | 1908년 5월 26일 |
제작|간행처 |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 한인 거류지 344호 |
성격 | 한글신문 |
관련 인물 | 최만학[발행인]|최봉준[사장]|정순만[주간|주필|총무]|이강[편집원]|장지연[주필]|김하구[기자]|박영진[문선공(文選工)]|대죽차낭(大竹次郞)[기계 담당]|이종운(李鍾雲)[편집원]|이반 페도토비치 듀코프[Иван Федотович Дюков][발행인 겸 편집인] |
발행인 | 최만학|듀코프 |
총호수 | 총 75호 |
1908년 2월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의 재러 한인들에 의해서 간행된 해외 한인 최초의 한글 신문.
러일 전쟁 후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될 운명에 처하자 재러 한인들은 각처에서 조선의 국권 회복 운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극동의 주요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국권 회복을 위해 신문, 잡지 등을 간행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살고 있는 재러 한인들의 지지 아래 최봉준 등 러시아 지역 토착 세력과 정순만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망명자들이 합세하여 블라디보스토크의 주민들로 구성된 민회를 중심으로 신문의 발간이 추진되었다. 최봉준은 연해주 군지사의 허가를 받아 『해조신문』을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한인 민회에 주소지를 두고 간행하였다.
『해조신문』은 한글로 발행되었다. 당시 러시아 국교가 러시아 정교였던 이유로 일요일과 부활절 다음날을 제외하고 매일 간행되는 일간 신문이었다.
『해조신문』 지면은 논설, 잡보, 외보(外報), 전보, 기서(奇書), 소설, 낭만(漫筆). 본항정보(本港 情報), 광고, 별보 등으로 구성되었다. 논설에서는 주로 러시아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에 대한 계몽적인 글을 게재하였다. 또한 국내의 정치 상황에 대한 평론도 실었다. 잡보에는 중앙의 정치 상황, 지방관의 활동, 일제의 만행과 의병의 활동상을 다루었다. 외보와 전보는 외국에서 있었던 일들을 보도하였고, 기사는 블라디보스토크 일대에 살고 있는 지식인들에 의해 주로 작성되었다. 『해조신문』은 대부분 국내에서 발행되는 신문의 기사 내용, 미주, 일본, 러시아 등지에서 간행되는 신문을 인용하여 보도하였다.
『해조신문』은 러시아에 살고 있는 한인들에게 국권 회복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간행된 신문이었다. 따라서 재러 한인의 당시 처지와 관련한 국권 회복 강조, 민족적 단결, 민족 의식 고양, 의병 활동 소개, 일제 만행 비판 내용이 실렸다.
『해조신문』은 재러 한인의 민족 운동 발전에 일익을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국내에도 전달되어 조선인의 민족 의식을 고양시키는 데에도 기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