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신보』

한자 靑丘新報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문헌/연속 간행물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우수리스크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창간 시기/일시 1917년 7월 7일
성격 신문
관련 인물 김만겸|조완구|윤해|박은식|남공선
창간인 최봉준|문창범|보리스 전(田)
정의

1917년 러시아 연해주 니콜스크우수리스크[현 우수리스크]에서 전로한족중앙총회가 간행한 신문.

개설

『청구신보』는 1917년 6월 3일부터 러시아 연해주 니콜스크-우수리스크에서 개최된 전로한족중앙총회의 결의에 따라 기관지로 기획되었다. 창간 위원으로 최봉준, 문창범, 보리스 전(田)이 선출되었다. 『청구신보』의 주필은 창간 당시에는 김만겸, 그다음에 조완구, 윤해가 맡았다.

창간 경위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 후 6월 4일 니콜스크-우스리스크에서 러시아 이르쿠츠크를 기준으로 동쪽에 위치한 각 지역의 대표 96명이 참가한 가운데 전로한족중앙총회가 개최되었다. 원호인이 중심이 된 전로한족중앙총회에서 러시아 임시 정부 지지를 결정하고, 한글로 된 정기 간행물을 출판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 결정에 따라 『청구신보』가 창간되었다.

형태

『청구신보』는 현재 제14호[1917년 10월 7일], 제15호[1917년 10월 14일], 제20호[1917년 11월 18일], 제26호[1917년 12월 20일], 제27호[1918년 1월 6일] 등 6호만 남아 있다.

구성/내용

1면에는 논설과 사화(史話), 한시(漢詩), 기행, 시사 해설 등을, 2면에는 외신, 고국 소식, 러시아 소식을, 3면에는 기서(奇書)와 새 소식 등을, 4면에는 광고를 게재하였다. 확인 가능한 논설의 제목은 제14호 「듣고 보는 일을 넓힐 일」, 제15호 「근본을 세울 일」, 제16호 「술장사 하는 동포의 깨달음을 재촉함」, 제20호 「러시아 공화국 국회 의원 선거와 귀화 한인」 등이다. 논설에서는 한인들을 계몽하기 위한 글과 『청구신보』의 정치적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내용을 실었다.

변천과 현황

전 한족회가 통합된 이후 새롭게 구성된 중앙총회는 『청구신보』를 1918년 7월 『한족공보』로 개칭하였고, 『청구신보』는 폐간되었다.

『청구신보』는 러시아 시베리아 특히 연흑룡주, 간도 훈춘 지방, 상해 북경 지방, 미국 샌프란시스코, 하와이 등지에 1,600부를 배포하였다. 1918년 3월 21일자 『신한민보』의 경우 미주 동포들에게 『청구신보』의 구독을 선전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전로한족중앙총회의 기관지 역할을 하면서 배일 사상을 선전했다.

참고문헌
  • 임경석,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역사비평사, 2003)
  • 박환, 『러시아 지역 한인 언론과 민족 운동』(경인문화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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