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보』

한자 新民報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문헌/연속 간행물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창간 시기/일시 1925년
성격 신문
관련 인물 허성
정의

1925년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 신한촌에서 만들어졌던 신민부의 기관지.

개설

1925년 중국 북만주 충동로(虫東路) 석두하자(石頭河子)의 한국인촌에 근거를 둔 신민부(新民府)의 기관지로 잠시 동안 발행된 신문이었다. 신한촌은 해외 한인 사회가 서로 연결된 창구였으며, 한인 사회의 여론을 이끌어 가는 주도적인 위치에 있었다. 특히 1919년 3·1 운동 이후에 신문·잡지가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 근거를 두고 만들어져서 각지로 보내졌다. 신민부의 『신민보』도 그중의 하나였다. 편집인은 허성(許星)이었으며, 짧은 시간 동안 발행을 하고 폐간되었다.

구성/내용

1925년 8월 29일자 제12호에서 「제15회 국치일(國恥日)에 임하여」라는 제목의 사설과 함께 각지의 민족 운동 실태와 상황을 크게 보도하였다. 또 중국 북만주 충동로 지방 소식으로 청년회가 조직되었다는 등의 소식을 보도하였다. 상해 거류 동포들의 소식과 해외 동포들이 중국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중등 학교 수준의 것으로 김규식(金奎植)·최창식(崔昌植)·여운형(呂運亨) 등이 주재하는 3·1학교 설립에 대한 소식도 보도하였다.

참고문헌
  • 『러시아·중앙아시아 한인의 역사』(국사편찬위원회, 2008)
  • 계봉우, 「아령실기」(『독립신문』, 1920. 2. 20~1920.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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