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양보』

한자 大洋報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문헌/연속 간행물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블라디보스토크시 아무르스카야 거리 89  
시대 근대/개항기
상세정보
창간 시기/일시 1911년 6월 5일
폐간|종간 시기/일시 1911년 9월 14일
제작|간행처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 아무르스카야 89
성격 한글신문
관련 인물 최재형[사장]|신채호[주필]|차석보[총무]|이종호|최재형|이갑|이위종|이종호|안창호|김병학|이강|김규섭[회계]|김만식[서기]|이춘식|집금계(集金係)
발행인 유진률[발행인 겸 편집인, 러시아어 번역]|김대규(金大奎)[발행인]
총호수 총 13호
정의

1911년 6월 5일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에서 유진률 등에 의해서 창간된 한글 신문.

개설

『대양보』의 발행인 겸 편집인에는 유진률이 취임하였으나 유진률과 재정적인 지원자였던 이종호 사이에 의견 충돌이 일어나 1911년 9월 14일자로 유진률이 사임했다. 『대양보』는 국내로도 반입이 되었으나 창간 직후부터 조선총독부는 들어오는 모든 신문을 압수하기 시작했다. 현재 『대양보』의 실물 확인이 어려워 정확한 지면 상태를 알 수 없다. 『대양보』는 모두 13호가 발행되었다.

창간 경위

1910년 9월 1일 『대동공보』가 폐간되었다. 이에 안창호, 최재형, 이종호, 김병학, 이강 등이 주축이 되어 1911년 4월 26일[러시아력]에 유진률의 명의로 군지사(軍知事)에게 『대양보』 간행을 청원하였다. 그 결과 1911년 5월 5일에 신문 발행 허가를 얻게 되었다. 발행 장소는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 아무르스카야 89에 있는 러시아인의 집을 빌려서 사용하였다. 6월 2일에 제1호를 발간하기로 하고 사장에 최재형, 주필 신채호 등을 선정하였다. 『대양보』백원보(白元甫)가 갑자기 경찰서에 구인되는 사건이 발생하여 6월 2일 창간호를 발행하려던 일정이 연기되어 1911년 6월 5일에 창간호를 발행했다. 창간호 이후 모두 13호가 발행되었다. 1911년 9월 17일 밤중에 활자 1만 5000개를 도난당하고 이후 발행되지 못했다.

구성/내용

러시아 측의 허가 증명에 따르면 『대양보』의 내용을 조선, 일본, 청국, 기타 조선인의 이해 관계가 있는 구주 제국의 시사 문제, 외보, 조선 및 이웃 나라의 잡보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대양보』 창간호의 경우 사설, 내국[러시아] 전보, 외국 전보, 각국 통신, 최근 시사, 논설, 잡보, 대한 통신, 만필, 기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변천과 현황

『대양보』는 1911년 7월 3일[러시아력] 청년근업회(靑年勤業會)가 권업회(勸業會) 발기회와 합하여 결성된 권업회의 기관지로 발전하였다.

참고문헌
  • 『러시아·중앙아시아 한인의 역사』(국사편찬위원회, 2008)
  • 박환, 『러시아 지역 한인 언론과 민족 운동』(경인문화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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