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공보』

한자 大東共報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문헌/연속 간행물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블라디보스토크시  
시대 근대/개항기
상세정보
창간 시기/일시 1908년 11월 18일
폐간|종간 시기/일시 1910년 7월 1일
성격 한글 신문
관련 인물 차석보|유진률|윤필봉|이강
창간인 차석보
발행인 콘스탄틴 헤드로위치 미하일로프
판형 6단으로 시작해서 1909년 5월 23일 8단으로 변경
정의

1908년 11월 18일에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에서 한국국민회(韓國國民會)가 기관지로 창간한 한글 신문.

개설

창간 당시의 주요 인물은 사장 차석보(車錫輔), 편집장 유진률(兪鎭律)[유가이 니콜라이], 발행인 콘스탄틴 헤드로위치 미하일로프, 주필 윤필봉(尹弼鳳), 정순만(鄭淳萬), 기자 이강(李剛) 등이었다. 『대동공보』『해조신문(海朝新聞)』의 후신으로 『해조신문』과 마찬가지로 한글로 발행되었다. 한글로 발행된 것은 러시아 연해주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다. 신문의 내용도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항일 의식을 고취하는 방향이 많았다. 『대동공보』는 러시아 연해주 지역뿐만 아니라 중국 만주 지역으로도 배포되었고, 일부는 국내로 밀반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동공보』는 논조 때문에 일제 당국에 의해서 수없이 압수 처분을 받았는데, 1909년에서 1910년 사이에 88회나 압수되었다고 한다.

창간 경위

1908년 국외에서 최초로 발행된 한글 신문인 『해조신문』이 일제의 압력에 의해 1908년 5월 26일 폐간되자, 유진률, 차석보, 문창범 등이 러시아 연해주 당국의 허가를 얻어 새롭게 『대동공보』를 창간하였다.

형태

『대동공보』는 주 2회 발행되었다. 처음에는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에 발행되다가, 1909년 5월 30일부터는 목요일과 일요일로 발행일이 변경되었다. 지면은 6단으로 시작하여 1909년 5월 23일호부터 8단으로 확대되었다. 지면수는 4면을 기본으로 하였고, 경우에 따라 6면으로 간행되었다.

구성/내용

『대동공보』의 구성은 논설, 전보, 외보, 제국 통신, 잡보, 별보, 기서, 비유 소설, 광고, 특별 광고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잡보에서는 러시아 연해주 내의 다양한 지역 소식을 전달했다. 러시아 총독의 일거수일투족부터 한인 사회에서 발생한 다양한 소식까지 러시아 연해주에서 발생한 모든 내용을 다뤘다. 제국 통신란을 통해서는 국내의 소식을 전달했는데, 일제에 대한 비판적 기사가 상당수 실렸다. 러시아 연해주 한인 사회의 지도자들이 『대동공보』의 기사 대부분을 작성했다.

변천과 현황

재정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발간되었으나 중간에 정간되는 일도 있었다. 1909년 3월 3일부터 다시 발행되었다가 1910년 7월 1일 재정난과 함께 일제의 요청에 의해 폐간되었다.

의의와 평가

한국국민회의 기관지로서 해외 동포의 사상 계몽을 목적으로 하였으며, 러시아에 거주하는 한인들에게 항일 의식과 독립 의식을 고취한 해외 민족지의 대표격인 매체이다.

참고문헌
  • 임경석, 『동아시아 언론 매체 사전-1815~1945』(논형, 2010)
  • 박환, 「구한말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간행된 민족지: 『대동공보』」(『한국학보』19-4, 일지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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