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대원』

한자 攻擊隊員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문헌/연속 간행물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하산 지역 포시에트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창간 시기/일시 1933년
폐간|종간 시기/일시 1935년 3월 23일
관련 인물 마천[주필]|김진[주필]|채병도[기자]|김병옥[『선봉』 특파원]|김철|김 아파나시
총호수 총 144호
정의

1933년 러시아 연해주 하산지역 포시에트시의 엠테에스 정치부가 발행한 고려인 대상 한글 잡지.

창간 경위

1933년 러시아 연해주 하산 지역의 포시에트시 엠테에스[МТС: 자동차 및 트랙터 보급소]는 정치부를 창설하였다. 그 이유는 기존 경제 및 기술 지도의 중심 기관인 엠테에스에 정치 및 조직 지도의 중심 기관 역할을 더하여 전환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치부는 비공산당원 콜호즈 활동원 간의 결속을 위한 활동과 정치 교육 활동을 전개하였다. 포시에트시 엠테에스 정치부는 신문을 몇 종 발간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공격대원』이다.

형태

『공격대원』은 처음에는 5일 간격으로 발행되다가 1934년 8월 3일 제72호부터는 3일 간격으로, 1934년 10월 15일 제97호부터는 격일로 간행되었다.

구성/내용

토호 세력들을 배척하는 기사, 포시에트 엠테에스 정치부장이었던 김 아파나시가 쓴 글 등이 있다. 『공격대원』은 『프라우다』, 『선봉』, 『적기』 등의 신문 기사를 그대로 싣기도 하였다.

변천과 현황

『공격대원』은 1933년부터 1935년 3월 23일까지 모두 144호가 발행되었다. 1935년 3월 23일 포시예트의 엠테에스 정치부가 구역 당위원회와 연합하게 됨에 따라 구역 신문 『레닌의 길로』와 연합하여 폐간되었다.

『공격대원』의 책임 주필은 마천이었고, 마천의 휴가로 제34호[1934년 1월 13일]부터 김진이 주필을 대신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제53호[1934년 5월 1일]부터 마천이 다시 주필이 되었다. 채병도, 김병옥[『선봉』 특파원], 김철 등이 기자로 일하였다.

의의와 평가

포시예트에서 간행된 『공격대원』은 다른 엠테에스에서 간행한 신문들과 마찬가지로 근로자 교육과 선진 경영 및 진보적 농업 기술의 보급, 생산량 증대 등에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공격대원』에는 1937년 스탈린에 의한 강제 이주 직전 체포되어 처형당한 김 아파나시의 남긴 글이 다수 수록되어 있어 김 아파나시의 활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참고문헌
  • 박환, 『러시아 지역 한인 언론과 민족 운동』(경인문화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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