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조선 학교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러시아 사할린주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정의

1945~1964년 러시아 사할린주와 쿠릴열도에 존속한 재러 한인을 위한 학교 현황.

개설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사할린과 쿠릴열도에 소비에트 정권이 들어섰다. 소비에트 정권은 재러 한인들의 소비에트 체제 적응을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 학교를 설립하기 시작했다. 1948~1949년 조선 학교는 초등학교 50개, 7년제 중등학교 12개로 모두 62개로 늘었다. 이후에도 조선 학교 설립은 계속되었고 1950년에는 초등학교 50개, 7년제 중등학교 37개로 모두 87개로 증가했으며 학생 수는 7,000명이었다. 이후 조선 학교 설립은 거의 중지되었다. 사할린 조선 학교는 결국 학교 부족, 교사 양성, 교과서 조달, 한국어 교육 방법론 개발 등의 어려움 등의 이유로 1964년 일괄 폐교되었다.

1945년 사할린 조선 학교 설립 배경과 현황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 대전 후 소비에트 정권은 재러 한인들의 소비에트 체제 적응을 돕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사할린과 쿠릴열도에 한인 학교를 설립하기 시작했다. 쿠스타노프(Костанов А. И.)와 포들룹나야(Подлубная. И. Ф.)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1945년부터 1963년 조선 학교와 학생 수는 다음과 같다. 초등학교는 1945년 27개, 1946년 28개, 1947년 28개, 1949년 55개, 1950년 57개, 1955년 32개, 1958년 17개, 1963년 10개였다. 7년제 중등학교는 1946년 8개, 1947년 11개, 1949년 13개, 1950년 15개, 1955년 22개, 1958년 13개, 1963년 11개였다. 10년제 중등학교는 1958년 11개, 1963년 11개였다. 조선 학교 총 학생 수는 1945년 2,300명, 1946년 3,000명, 1947년 3,137명, 1949년 4,692명, 1950년 5,308명, 1955년 5,950, 1958년 7,214명, 1963년 7,239명이었다.

지역 및 연도별 한인 학교 설립 및 폐교 현황은 다음과 같다. 1945~1946년 초등학교 설립을 보면 네벨스크시에 1개교가 설립되었고 학생은 총 151명이었다. 유즈노사할린스크시에 1개교가 설립되었는데 학생 수가 설립 당시 183명, 폐교 당시 196명이었다. 돌린스크시에 2개교가 설립되었는데 학생 수가 설립 당시 390명, 폐교 당시 280명이었다. 마카로프시에 2개교가 설립되었는데 학생 수가 설립 당시 465명, 폐교 당시 376명이었다. 포로나이스크시에 4개교가 설립되었는데 학생 수가 설립 당시 56명, 폐교 당시 104명이었다. 레소고르스크 지역에 4개교가 설립되었는데 학생 수가 설립 당시 296명, 폐교 당시 288명이었다.

1948~1949년 조선 학교는 초등학교 50개, 7년제 중등학교 12개로 모두 62개로 증가했다. 이후에도 조선 학교 설립은 계속되었고 1950년에는 초등학교 50개, 7년제 중등학교 37개로 모두 87개로 증가했으며 학생 수는 7,000명이었다. 이후 조선 학교 설립은 거의 중지되었다.

조선 학교 폐교 이유

1947년 1월부터 조선 학교는 일본식 교육 제도에서 소비에트식 교육 제도로 바뀌면서 러시아어 수업이 늘었다. 1~3학년 학생은 주 13회, 7~8학년 학생은 하루 2~3시간씩 러시아어 수업을 받았다. 하지만 조선 학교는 여전히 학교 부족, 교육자의 자질을 갖춘 교사 확보 문제, 교과서 부족, 학교 건물의 노후화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다. 먼저 학교 부족 문제로, 신설 학교가 계속 생겼지만 학생 수를 따라가지 못했고 학교는 여전히 부족했다. 학교 내 공간도 부족하여 수업은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졸업률은 80%였다. 7~8학년을 두 번 다니는 학생, 6학년 때 중퇴하는 학생이 많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교육자의 자질을 갖춘 교사 확보 문제이다. 초기 조선 학교 교사는 기본적인 자격을 갖추지 못했거나 과거 일본 학교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소비에트 교육 시스템을 알지 못하는 한인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교사의 수도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연방공산당 볼세비키 사할린주 위원회는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서 소비에트 한인을 데리고 왔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다. 세 번째, 교과서 부족 문제이다. 1950~1960년대 일부 교사들이 한국어 교과서를 발행하기도 했지만 증가하는 학생 수와 비교할 때 턱없이 부족했고 국가 차원의 조직적 작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교과서의 질도 떨어졌다. 이에 더하여 한인 학생의 소비에트 체제 적응을 위해서는 러시아어 능력을 배양해야 했고 이에 알맞은 교과서를 개발해야 했다. 따라서 1962년 인민 교육 주무 부처에서는 러시아 연방 계몽부에 사할린 조선 학교 교과서를 러시아어로 번역하는 문제를 제안했지만 계몽부는 자력으로 해결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사할린주 집행위원회의 1963년 5월 13일자 결정문 №169을 통해 한인 중등학교를 8년제 소비에트식 중등학교로 재편하고 7년제, 8년제 학교의 수업은 러시아어로 번역되어 진행되었다. 또 한인 청장년 노동자 야간 학교 2개교는 러시아 학교와 합쳐졌다.

사할린 조선 학교는 결국 학교 부족, 교사 양성, 교과서 조달, 한국어 교육 방법론 개발 등의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다. 이에 더하여 조선 학교를 졸업한 사할린 한인 청년들 대다수가 러시아어에 능통하지 못하여 소비에트 대학이나 기술 전문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였다. 이로 인해 조선 학교의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고 조선 학교 폐쇄 방침에 따라 1964년 폐교되었다.

참고문헌
  • Дин Юлия Ивановна, 『Корейская диаспора Сахалина: проблема репатриации и интеграция в советское и российское общество』(Южно-Сахалинск: Сахалинская областная типография, 2015)
  • Костанов А. И., 『Подлубная И.Ф.Корейские школы на Сахалине: исторический опыт и современность』(Южно-Сахалинск: Архивный отдел администрации Сахалинской области, Сахалинский центр документации новейшей истории,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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