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주 한인이중징용광부유가족회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러시아 사할린주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92년 2월
개칭 시기/일시 1996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1년 6월
현 소재지 러시아 사할린주
정의

1992년 2월에 창립된 일제 강점기 러시아 사할린주에서 이중 징용의 피해를 당한 가족들의 단체.

개설

1944년 9월 사할린 탄광에서 아바라키, 규슈, 후쿠시마 지역 등으로 탄부들을 보내 이산가족이 된 유가족들의 단체이다.

설립 목적

사할린주 한인이중징용광부유가족회는 이중 징용된 사할린 한인들과 그 가족들의 생사 확인, 미불 임금, 우편 저금 등의 문제, 영주 귀국 문제 등의 해결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변천

1992년 2월 이중강제징용자찾기 발기자위원회가 창립되었다. 회장은 안명복이었다. 1996년 사할린주 한인이중징용광부유가족회로 개칭되었다. 2001년 6월 사할린주 한인이중징용광부유가족회가 법인 등록되었다[유가족 288명]. 2002년부터 서진길이 회장을 맡았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사할린 한인 이중 징용 광부 피해자 유가족에 대한 영주 귀국 및 보상 문제에 관한 기본 요구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1945년 8월 15일까지 출생한 유가족들을 피해자로 취급하여 매 유가족에게 보상할 것. 둘째, 고국인 한국으로 영주 귀국 희망자들에게는 귀국자가 요구하는 지방에 개인 소유권이 보장된 주택을 2003년까지 제공하며, 부양자들을 동반하는 귀국을 보장할 것. 셋째, 영주 귀국 유가족들에는 생활 보상을 위하여 1인당 매월 20만 엔을 지불하며 전 생애 기간에 무상 의료를 보장할 것. 넷째, 영주 귀국 후 사망자에게는 망향의 동산을 비롯한 어디든지 유언대로 매장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도록 한국 정부에 요청한다. 다섯째, 이중 징용 탄부들 중 1945년에서 2001년 현재까지 생사 여부를 알지 못하는 행방불명자들을 찾기 위한 탐사 기구를 조직하고 수색을 진행하도록 보장하고, 행방불명자들에 대하여서 사할린에 위령비를 설립하되 이 비용 일체는 일본 정부와 기업체가 부담할 것. 여섯째, 피해자 중 사할린 잔류 희망자들에게는 매 유가족당 10만 달러를 미화로 일시에 보상, 지급할 것.

2001년 3월 1일 사할린주 유즈노사할린스크시 일본 영사관 앞에서 피해 보상, 영주 귀국 실행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2005년에는 일본을 방문하여 이중 징용 관련 자료 수집, 생사 확인을 위한 활동을 벌였다. 미쓰비시, 미쓰이 석탄 방문, 외무성과 적십자 방문 및 큐슈 지방 현지 답사를 하였다. 2007년 7월 4일에는 사할린 내 한인문화센터 앞마당에 사할린 한인이중징용광부피해자비를 세웠다.

2013년 사할린 한인 2세들로 구성된 한인회장들[한인회장 임용군, 이산가족회장 박순옥, 노인회장 윤상철, 김홍지 노인회 고문, 서진길 한인이중징용광부유가족회장]의 일본 방문 때도 동행하여 외무성, 적십자, 의회를 방문했고, 증언 대회를 통하여 사할린 한인 문제의 실상을 알리기도 했다.

현황

이중 징용은 1944년 9월 사할린 탄광에서 일본으로 물자 수송이 어렵게 되자 현재 사할린주 우글레고르스크 지역 14개 탄광을 폐쇄하고 이곳 탄광 노동자들을 일본 본토로 배치한 것을 말한다. 일본에서는 전환 배치라고 말하지만, 사할린 한인들은 한반도에서 사할린으로 한 번, 사할린에서 일본 본토로 두 번 징용을 당하였다 하여 이중 징용으로 부르고 있다.

『사할린 이중 징용 피해 진상 조사』에 의하면 실제 이중 징용 인원은 3,191명이다. 그리고 이들 중 가족이 있는 인원은 1,000여명, 가족의 수는 약 3,500여 명이었고, 나머지 2,000여 명은 단신자(單身者)였다.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에서 2005년 6월, 2006년 8월에 사할린에서 이중 징용 피해에 대한 진상 조사를 벌여 2007년에 『사할린 이중 징용 피해 진상 조사』와 구술집 『지독한 이별』을 발간했다. 위원회의 진상조사는 2005년 5월 3일자로 노영돈[인천대학교 교수]과 서진길[러시아 사할린주 한인이중징용광부유가족회 회장]이 위원회에 진상 조사를 신청하면서 이루어졌다.

의의와 평가

사할린주 한인이중징용광부유가족회는 징용 피해자들을 찾아 기록을 남기고, 자료를 만들었다. 이중 징용 피해자들은 당시 일했던 사할린 탄광, 일본 본토의 탄광 등을 분류하고 피해자에 따른 유가족 명단을 작성하였다. 초대 회장 안명복[1933~2015]은 2001년 영주 귀국을 하여 한국에서 고충처리위원회, 행자부, 국회, 헌법재판소 등에 민원을 제기하고 한국 정부의 진상 조사 시 상당한 자료 제공과 생생한 증언으로 이중 징용의 역사를 복원하고 기록하는 데 기여를 하였다. 또한 일본의 연구자 나가사와 시게루, 하야시 에이다이 등과 교류를 통해 일본 내 자료 수집뿐만 아니라 생사 확인을 위한 노력을 하였다. 현재 서진길 회장의 아버지 역시 우연히 탄광 사망자의 부조금 명부에서 이름을 발견하여 최소한 그 당시의 행방을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피해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신들의 기록을 찾고 진상 규명과 보상 문제를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으로 사할린 한인의 역사를 드러내고 복원하는 데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 『사할린 이중 징용 피해 진상 조사』(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 2007)
  • 『사할린 잔류 한인이중징용광부유가족회 회보』(사할린주 한인이중징용광부유가족회, 2007)
  • 『지독한 이별-사할린 이중 징용 진상 조사 구술 기록』(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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