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타젤

원어 항목명 Политотдел
영문 politotdel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지명/시설
지역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주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원어 항목명 Политотдел
성격 콜호즈
정의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주에 있던 대표적인 고려인 콜호즈.

개설

고려인 집단 농장 폴리타젤은 우즈베키스탄뿐만 아니라 소련 전역에서도 유명했다. ‘북극성’ 집단 농장과 함께 우즈베키스탄 고려인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황만금이 지도하던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해외 귀빈들의 정규 방문 코스였을 정도이다. 폴리타젤 내부에는 학교, 병원, 백화점, 극장, 대운동장 등이 갖추어져 있었으며, 전속 악단 ‘청춘’과 축구단도 보유하고 있었다.

폴리타젤 집단 농장의 전성기는 황만금이 지도자로 선출되면서 시작되었다. 황만금은 토지 개간과 농업 전문가 영입 및 선진 영농 기술을 도입하여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증대시켰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황만금의 지도력과 폴리타젤의 우수성은 전 소련에 알려졌다. 황만금은 집단 농장의 이윤을 문화 사업에 투자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전속 악단 청춘과 폴리토트델 축구단이었다. 청춘은 전 소련 음악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으며, 축구단은 우즈베크 사회주의공화국을 대표하는 축구단이 되었다. 폴리타젤황만금이 고르바초프 집권 시기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투옥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폴리타젤김병화가 지도했던 북극성 집단 농장과 함께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사회의 성공적인 정착 사례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집단 농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변천

1925년 우즈베키스탄 북치르치크 강변에 소규모 한인 집단 농장 ‘일심’이 세워졌다. 김 니콜라이가 집단 농장 일심을 지도하였고, 소련에서 최고의 벼품종으로 알려진 경조미를 생산하였다. 1931년에 일심은 ‘10월’로 개명되었다가 이후 폴리타젤이 되었다.

구성

고려인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었으며,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집단 농장 중의 하나였다.

현황

1991년 우즈베키스탄의 독립과 함께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현재 폴리타젤에는 고려인이 여전히 거주하고 있으나 그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여타 고려인 집단 농장들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들은 러시아와 한국 등으로 이주 노동을 떠났으며, 아이들은 인근의 타슈켄트로 유학을 떠났다.

폴리타젤 콜호즈에서 사회주의 노동 영웅 칭호를 받은 사람은 황만금과 이 류보비가 대표적이다. 황만금의 아들인 황 스타니슬라프는 폴리타젤을 주식회사로 변환시켜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참고문헌
  • Брутт Ким·Михаил Ким, 『Хван ман Гым: через олимп и голгофу』(Baktria press, 2013)
  • Коре Сарам(http://koryo-saram.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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