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 Giga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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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우즈베키스탄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준공 시기/일시 | 194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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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공 시기/일시 | 1957년 |
증설|폐설 시기/일시 | 1991년 |
1941년 우즈베키스탄 나망간주, 1957년 우즈베키스탄 카라칼파크스탄에 설립된 고려인 콜호즈.
1937년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이후 소련 공산당과 우즈베키스탄 당국의 결정에 따라 우즈베키스탄에 고려인들로 구성된 고려인 콜호즈 50개가 조직되었다.
우즈베키스탄에 있었던 기간트라는 명칭의 콜호즈는 두 곳이다.하나는 1941년 1월에 우즈베키스탄 페르가나주의 튜라쿠르간 지역에 벼농사 진행을 위한 기간트 콜호즈가 고려인 90가구 2㎢ 면적으로 형성되었다. 임명익[1905~975]이 30년간 회장으로 콜호즈를 지도했다. 1941년 3월에 튜라-쿠르간 지역은 페르가나주에서 분리되어 나망간주에 포함되었다. 기간트 콜호즈는 인접한 척박한 토지를 개발하면서 그 면적을 점차 확대하면서 대형 콜호즈로 성장했다. 기간트 콜호즈는 처음에는 벼 재배에 주력했지만 점차 주 재배 작물을 목화로 변경했다. 기간트 콜호즈의 회장은 고가이 막심, 바달로프 사비르잔 등으로 이어졌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했다. 1960~1970년대에 콜호즈 주 구성원인 고려인들이 나망간이나 페르가나시 등으로 이주하면서 순수 고려인들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현재 기간트 콜호즈에는 수십 가구 규모의 고려인만이 거주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이주 고려인들이 편입된 우즈베키스탄 카라칼팍 자치공화국 침바이 지역에 형성되었던 콜호즈이다. 1957년부터 1968년까지 존속했다.
1991년 소련 해체로 콜호즈가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