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카자흐스탄 |
시대 | 현대/현대 |
1937년 고려인들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이후 만든 고려인 콜호즈.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결정에 따라 연해주 지역 한인들이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 정착했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거의 전역에 걸쳐 정착했다. 대표적으로 우슈토베, 크질오르다, 카라간다, 심켄트 등의 지역이 바로 그곳이다.
연해주 지역에서 이미 집단 농장을 결성했던 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하면서 대부분 집단 농장별로 이주해 왔다. 따라서 카자흐스탄에 정착하면서 곧바로 고려인들이 주도한 콜호즈를 조성할 수 있었다. 고려인 콜호즈는 고려인만으로 구성되기도 했고, 카자흐스탄 콜호즈와 결합하기도 했다.
카자흐스탄 고려인 콜호즈의 대표적인 작물은 벼와 목화였고, 그 외에 양파와 수박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였다.
카자흐스탄 고려인 콜호즈는 소련에서 가장 높은 성과를 올리는 대표적인 소수 민족 콜호즈 중의 하나였다. 또한 스탈린과 흐루쇼프, 브레즈네프 등 역대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외국의 귀빈들이 방문하는 대표적인 집단 농장 중의 하나였다.
카자흐스탄 고려인 콜호즈는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한 고려인들이 연해주 지역에서의 집단 농장을 그대로 이전해 오거나 카자흐스탄에서 새로 집단 농장을 조성하면서 형성되었다. 주로 크질오르다주의 시르다리야강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1938년 조성된 고려인 콜호즈는 1938년 고려인 재배치 과정을 거쳐 고려인만으로 구성된 콜호즈와 현지 주민으로 구성된 카자흐스탄 콜호즈에 결합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고려인 콜호즈는 1939년 이후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941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고려인 콜호즈원들은 무기 제작을 위한 지원과 노동군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고려인 콜호즈는 급속도로 발전했고, 높은 생산성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1950년대에 고려인들은 소련방에서 다수의 사회주의 노동 영웅을 배출했다. 이는 민족 대비 가장 높은 노동 영웅 배출 비율을 보여 준 것이었다.
카자흐스탄의 콜호즈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고려인으로 구성된 콜호즈와 현지 주민인 카자흐스탄인들과 결합된 콜호즈가 있다. 콜호즈는 콜호즈 대표, 회계 담당, 정치 위원, 브리가지르로 표현되는 작업 반장, 작업 조원 등으로 조직되어 있다.
고려인 콜호즈에는 학교, 작업장, 탁아소, 회의와 공연을 할 수 있는 인민 대회 궁전, 공동 식당 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