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리스탄

원어 항목명 Гулистан
영문 Gulistan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지명/시설
지역 우즈베키스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원어 항목명 Гулистан
성격 콜호즈
정의

일제 강점기와 그 이후 우즈베키스탄에 형성된 동명의 3개 고려인 콜호즈.

개설

1.러시아 연해주 수찬 지역의 타우데미촌에 있던 재러 한인 콜호즈 몰니야(Молния)가 1937년에 우즈베키스탄의 하(下)치르치크로 강제 이주되어 형성된 콜호즈이다. 1938년 초 굴리스탄 콜호즈는 고려인 80가구, 300명 정도로 구성되어 있었다. 벼 재배지는 1.07㎢였고, 산출량은 0.01㎢[1㏊]당 1.5톤 정도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무렵에는 벼 재배지가 4.5㎢까지 확대되었다. 이후 굴리스탄 콜호즈는 케나프와 목화 재배를 늘려 나갔다.

2. 1960년대 초에 우즈베키스탄 상(上)치르치크 지역의 ‘부존느이’, ‘붉은 동방’ 등 여러 콜호즈들이 통합되어 만들어진 콜호즈이다.

3. 이주 고려인들이 편입된 우즈베키스탄 호레즘주 구를렌 지역에 형성되어 있던 콜호즈이다. 1938년 6월 15일 기준으로 63가구의 고려인이 거주하였다. 초대 회장은 동장승(Тон Чан Сен)[1900~1954]이었다. 1960년대 초에는 솝호즈로 전환되었다.

건립 경위

1917년 혁명 이후 사회주의 체제에서 농촌의 농업 집단화 정책에 따라 소련 전역에서 콜호즈가 조직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콜호즈이다. 우즈베키스탄에 조직된 콜호즈는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이후 소련 공산당과 우즈베키스탄 당국의 결정에 따라 우즈베키스탄에 고려인들로 구성된 콜호즈 50개가 조직되었다. 집단 농장 관리의 효율성, 생산성 증대를 위해 1960년대에 여러 콜호즈를 통합하여 새로이 건립하기도 하였다. 상치르치크 지역의 굴리스탄 콜호즈가 이에 해당한다.

변천

우즈베키스탄 하치르치크 지역에 형성된 굴리스탄 콜호즈는 프라브다로 명칭이 변경되어 1992년까지 유지되었다.

우즈베키스탄 상치르치크의 굴리스탄 콜호즈는 1962년에는 ‘공산주의의 여명[Заря коммунизма]’으로 불렸고, 콜호즈 회장은 황 발렌틴 안드레예비치였다. 1991년 말 해체되었다.

우즈베키스탄 구를렌 지역의 굴리스탄 콜호즈는 1991년 말까지 존속하다가 해체되었다.

구성

우즈베키스탄 하치르치크의 굴리스탄 콜호즈는 연해주에서 이주해 온 콜호즈로 순수하게 고려인들로만 구성되었다. 반면 호레즘주의 굴리스탄 콜호즈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과 결합된 콜호즈였다.

현황

1991년 소련 해체 후 우즈베키스탄이 자본주의화하면서 콜호즈들은 해체되었다.

참고문헌
  • 김 게르만, 『한인 이주의 역사』(박영사, 2005)
  • Ким Брутт, 『Корейцы Узбекистана: Кто есть кто』(Ташкент-Сеул,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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