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鄭尙鎭 |
---|---|
영문 | Cheong Sangji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카자흐스탄 알마티주 알마티시 러시아 모스크바주 모스크바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출생 시기/일시 | 1918년 5월 5일 |
---|---|
수학 시기/일시 | 1936년 9월 |
활동 시기/일시 | 1940년 |
활동 시기/일시 | 1945년 8월 |
활동 시기/일시 | 1945년 10월 |
활동 시기/일시 | 1947년 |
활동 시기/일시 | 1948년 |
활동 시기/일시 | 1952년 10월 |
활동 시기/일시 | 1955년 10월 |
활동 시기/일시 | 1957년 10월 |
활동 시기/일시 | 1961년 |
몰년 시기/일시 | 2013년 6월 15일 |
출생지 |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시 |
거주|이주지 | 카자흐스탄 알마티시 |
학교|수학지 |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시로 이전]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하동(河東) |
1945년 8월 소련군 장병으로 대일 전쟁에 참가하여 전공을 세우고 북한과 카자흐스탄에서 활동한 고려인 문인.
정상진(鄭尙鎭)[1918~2013]은 1945년 8월 소련군 태평양함대 소속 해병대 정찰 상륙 부대의 일원으로 웅기, 나진, 청진항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하는 데 공을 세워 소련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8·15 광복 후 북한에서 일하다가 숙청당한 뒤 소련에 귀환하여 기자, 문인으로 활동했다.
정상진은 1918년 5월 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해삼(海蔘)]에서 태어나 1936년 해삼고려사범대학교 어문학부에 입학했다. 1940년에 크즐오르다 고려사범대학교[1937년 고려인이 강제 이주된 이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시에 다시 세워진 옛 해삼고려사범대학교]를 졸업하고 잘라가쉬 구역 중등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쳤다. 1945년 3월에는 소련군 태평양함대 해군육전대[해병대]에 배속되어 대일 전쟁에 참가했다. 정상진은 레오노프(В. Н. Леонов) 해군 대위가 이끈 60명의 정찰 상륙 부대원 중 유일한 고려인으로 1945년 8월 11일 웅기항, 1945년 8월 12일 나진항에 상륙했고, 1945년 8월 13일에는 청진항에 상륙하여 1945년 8월 18일까지 일본군 나남사단과 전투를 벌여 승리했다. 정상진은 이들 전투에서 세운 공적으로 소련 정부로부터 적기 훈장, 조국 전쟁 훈장 제2급, 영예 표식 훈장 등을 받았다.
이후 정상진은 북한에 들어가 1945년 10월 원산시 인민위원회 교육부 차장, 1947년에 북조선 문학예술인총동맹 부위원장을 역임하고, 1948년 여름에 김일성종합대학교 노문학과장이 되어 세계 문학과 문학 원론을 강의했다. 1952년 10월에는 북조선 문화선전성 제1부상이 되었다. 정상진은 1955년 10월 숙청되어 과학원 과학도서관장으로 있다가 1957년 10월에 소련으로 귀환했다. 귀환 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고급당학교 당기자부에 파견되어 4년간 공부하고 1961년에 공화국 간 공동 신문 『레닌기치』에 입사하여 1991년까지 기자·특파 기자·논설 위원으로 일했다. 2009년 1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러시아 모스크바로 이주해 살다가 2013년 6월 15일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