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 Kim Mans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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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카자흐스탄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출생 시기/일시 | 188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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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64년 8월 19일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49년 5월 20일 |
성격 | 사회주의 노동 영웅 |
성별 | 남 |
카자흐스탄에서 사회주의 노동 영웅 칭호를 받은 고려인.
김만삼[1883~1964]은 1883년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태어났다.1942년 독소 전쟁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토지 1㏊당 150첸트네르의 쌀을 생산함으로써 당대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였다. 김만삼은 꾸준히 벼 재배 실험을 통해 우수한 종자를 개발했고 영농 기술을 개선하여 벼 수확량 증진 방법을 찾아내 활용하였다. 김만삼은 제때에 논에 물 양을 조절하여 대는 방법, 무기 비료 사용과 제초 작업을 병행하는 법 등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수확량을 배가시켰다. 김만삼은 선진 영농 기술에 관심을 보인 다른 콜호즈나 다른 민족에게도 전수해 주었다. 인근 콜호즈 크질투에서 활동하던 터키계 카자흐인 이브라이 자하예프도 김만삼의 지도 덕분에 벼 생산에서 큰 성과를 냈다. 김만삼의 지도를 받은 6개 분임조 16명은 모두 사회주의 노동 영웅 칭호를 받았다. 김만삼의 선진 농업 기술은 그후 카자흐스탄 농학아카데미나 소련 국민경제달성박람회[ВДНХ]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1941년 6월 독일 파시스트가 소련을 침공한 이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한인 콜호즈는 농업 성취와 더불어 성금을 출연하여 소비에트연방의 승리를 기원하였는데, 『레닌기치』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김만삼은 사비를 털어 10만 5천 루블을 전차 부대 ‘크질오르다 콜호즈인’ 창설에 써 달라고 성금을 냈다. 김만삼은 1964년 8월 19일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