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미하일 바실례비치

영문 Kim Mihail Vasilevich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지방 노릴스크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7년 8월 8일
수학 시기/일시 1927년
수학 시기/일시 1932년
활동 시기/일시 1935년 10월 5일
활동 시기/일시 1936년 5월 30일
활동 시기/일시 1939년 3월 1일
활동 시기/일시 1936년~1959년
활동 시기/일시 1936년~1959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6년
활동 시기/일시 1959년~1970년
활동 시기/일시 1966년 4월 21일
몰년 시기/일시 1970년 9월 4일
출생지 러시아 연해주
학교|수학지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
학교|수학지 러시아 상페테르부르크
활동지 러시아 노릴스크
활동지 러시아 노릴스크
성격 학자
성별
대표 경력 소련 국가건설 크라스노야르스크 학술연구 분과 분과장
정의

러시아 동토 지역인 노릴스크시에서 영구 동토층 지반을 설계하였던 고려인 전문 건축가이자 학자.

개설

김 미하일 바실례비치[1907~1970]는 1920년대 러시아 연해주에서 반혁명 운동에 가담하였다는 죄목으로 러시아 북서부 노릴스크로 추방되었고, 1956년 완전히 복권된 이후로 영구동토연구소 소장으로 영구동토층에 건축물을 축조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공로로 레닌상을 수상했다.

활동 사항

김 미하일 바실례비치는 1907년 8월 8일 러시아 연해주 케드로바야 파디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1927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던 극동대학교 산하 노동자학부를 졸업하였으며 1932년 레닌그라드수력공학대학을 졸업하였다. 1924~1925년 연해주에서 반혁명 운동에 가담하였다는 죄목으로 1935년 10월 5일 체포되었다. 1936년 5월 30일 재산 몰수, 모든 권리 박탈, 4년 간 자유 박탈의 형을 선고받고 소련 중앙시베리아 고원의 북서부 지역인 노릴스크로 추방되어 수력공학 엔지니어로 근무하였다. 1939년 3월 1일 형을 마친 뒤 자유의 몸이 되었고 1956년 완전히 복권되었다. 1936~1959년 영구동토연구소 소장, 노릴스크 콤비네이션 설계지국 기획부 부장을 지냈다. 1959~1970년 소련 국가건설 크라스노야르스크 학술연구 분과 분과장으로 근무하였다. 김 미하일 바실례비치는 20세기 중반 소련이 영구 동토층에 지반을 건설하고 건축물 축조 작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1966년 4월 21일 김 미하일 바실례비치와 연구팀은 북극 노릴스크 콤비네이션과 노릴스크시 건설에 혁신적인 공법을 도입한 공로를 인정받아 레닌상을 받았다. 김 미하일 바실례비치는 오랫동안 노릴스크광산·야금기술학교(НГМТ)에서 교수로 근무하였으며, 1942년부터 1967년까지 42편 이상의 학술 논문을 발표하였다.

김 미하일 바실례비치는 1970년 9월 4일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시에서 개최된 ‘시베리아·극동 건설문제협의회’에서 보고서를 발표하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묘소

김 미하일 바실례비치의 유해는 러시아 노릴스크시에 안치되었다.

상훈과 추모

김 미하일 바실례비치는 1966년 4월 21일 레닌상을 수상하였고, 1998년 10월 31일 노릴스크 레닌그라드 프로스펙트 돔 19에 김 미하일 바실례비치의 기념비가 세워졌다.

참고문헌
  • 『Библиографический словарь отечественныйх востоковедов с 1917 г.』(М., 1995)
  • 『Энциклопедия корейцев России』(Москва: РАЕН, 2003)
  • Ку Дегай Светлана·Ким Владимир Дмитриевич, 『Корейцы–жертвы политических репрессий в СССР, 1934–1938 гг.』(Москва: Возвращение, 2004)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