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Кан Михаил Иванови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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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 Kang Michail Ivanovich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910년 8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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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31년 11월 |
활동 시기/일시 | 1937년 |
활동 시기/일시 | 1941년 |
활동 시기/일시 | 1945년 |
몰년 시기/일시 | 1961년 1월 3일 |
출생지 | 러시아 연해주 니콜스크우수리스크 |
거주|이주지 |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 |
거주|이주지 | 러시아 모스크바시 |
원어 항목명 | Кан Михаил Иванович |
성격 | 언론인|군인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레닌기치』 대표|소련군정 민정사령부 수석 통역관 |
한글 신문 『레닌기치』 대표를 지냈으며, 북한에서 소련군정사령부 통역관으로 일했던 고려인.
강 미하일 이바노비치[1910~1961]는 제2차 세계 대전 말 소련군으로 참전한 고려인이다.
강 미하일 이바노비치는 1910년 8월 12일 러시아 연해주 니콜스크우수리스크에서 태어났다. 한국 이름은 강용구이다. 1925년부터 1927년까지 니콜스크우수리스크에 있는 학교에서 수학했다. 1931년 11월 러시아 공산당에 입당했으며 1937년 가을부터 1941년까지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서 한글 신문 『레닌기치』의 대표로 근무했다. 1941년 4월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 노동적군으로 입대하여, 소련군 제25군 7호정치국 소좌가 되었다. 1945년 종전 후 북한으로 가서 소련군정 민정사령부의 수석 통역관으로 일했다. 이후 북한 정국 수습과 치안 유지 활동을 했으며, 1948년 12월 북한 주둔 소련군이 철수할 때 소련으로 귀환했다. 강 미하일 이바노비치는 1961년 1월 3일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