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섭

한자 黃京燮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블라디보스토크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14년 4월 7일
몰년 시기/일시 1920년 4월 7일
추모 시기/일시 2001년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1920년 4월 참변 당시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일본군에 의해 학살된 재러 한인 자본가이자 독립운동가.

개설

황경섭(黃京燮)[?~1920]은 어린 나이에 러시아로 이주하여 성공한 자본가로, 1910년대까지 러시아 군대에 소고기와 콩 같은 곡물을 납품하며 큰 부를 축적하였다. 1920년 4월 4일 일본군이 러시아 연해주를 점령하고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을 공격할 때, 체포되어 피살되었다. 뚜렷한 반일 행적이 없는 황경섭이 피살된 것은 황경섭의 재산을 노린 일본인의 음모였다는 설이 있다.

활동 사항

황경섭은 9세에 러시아로 이주하여 큰 자본을 모았다. 1910년까지 러시아 군대에 소고기와 콩 같은 곡물을 납품하며 러시아 은행의 두터운 신용을 받았다. 황경섭은 1914년 4월 7일 러시아 연해주 니콜스크우수리스크 권업회관에서 개최된 한인이주 50주년 기념회에서 300루불을 기부하였을 정도로 상당한 부를 쌓았다.

1920년 4월 4일 일본군이 러시아 연해주를 점령하고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을 공격할 때, 황경섭도 체포되어 피살되었다. 황경섭은 뚜렷한 반일 활동을 보이지 않았음에도 피살당하였다.

『독립신문』에는 황경섭이 러시아 혁명 이후 재산이 몰수될 것을 염려하여 러시아 연해주 니콜스크우수리스크시 일본인 민회장인 치쿠바의 명의로 재산을 이전해 두었는데, 황경섭의 재산을 노린 치쿠바가 일본군 헌병대와 짜고 황경섭을 체포해 학살하였다고 전한다.

상훈과 추모

2001년 대한민국 정부는 황경섭의 공적을 기려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임경석,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역사비평사, 2003)
  • 반병률, 「4월 참변 당시 희생된 한인 애국지사들-최재형, 김이직, 엄주필, 황경섭」(『역사문화연구』26,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2007)
  • 윤상원, 「러시아 지역 한인의 항일 무장 투쟁 연구(1918~1922)」(고려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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