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욱

한자 許在旭
영문 Heo Jaewook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19년
활동 시기/일시 1920년 10월
활동 시기/일시 1921년 1월
추모 시기/일시 1991년
활동지 중국 간도
활동지 러시아 연해주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북로군정서 제3 연대 제1 대대장
정의

일제 강점기 중국 북간도에서 부대를 이끌고 러시아자유시로 이동하여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허재욱(許在旭)[?~?]은 중국 간도 지역과 러시아 연해주 등지에서 무장 부대를 이끌고 항일 독립 전쟁을 벌인 군사 지휘관이다. 의군부 군대를 이끌고 한국인 무장 부대 통합을 위해 러시아 자유시로 이동했지만 자유시 사변으로 다수의 부대원이 사망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이에 항의하는 보고서를 코민테른 집행위원회에 제출하였다. 허영장·허은(許殷)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활동 사항

허재욱은 대한제국 시기 정규 한국군에서 영장(營長)을 지낸 탓에 허영장이라는 별칭으로 더욱 널리 알려졌다.

1919년 이범윤(李範允), 진학신(秦學新)과 함께 반일 무장 단체인 의군부를 조직하여 중국 북간도 왕청현(汪淸縣), 연길현(延吉縣) 지역을 근거로 활동하였다. 1920년 10월 벌어진 청산리 전투에서 북로군정서 제3 연대 제1 대대장으로 참여하여 활약하였다. 1920년 말부터 1921년 초에 걸쳐 무장 부대의 통합을 위해 중국 간도 지역의 무장 부대들이 러시아 자유시로 이동하였는데, 허재욱이 이끄는 의군부 군대도 1920년 12월경 중국 밀산을 거쳐 러시아 이만에서 군용열차를 타고 러시아 자유시로 이동하였다. 자유시로 이동할 당시 허재욱은 중국 간도에서 온 독립군 부대를 주축으로 편성된 사할린부대 제3대대 대대장이었다. 그러나 1921년 6월 26일 고려혁명군정의회의 편제 안에 따라 고려혁명군 산하 제1연대로 편제가 변경되었다.

자유시 사변 당시 허재욱이 이끄는 의군부 군대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허재욱은 직접 러시아 모스크바로 가서 자유시 사변의 책임을 묻는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허재욱은 이병채(李秉埰)와 공동 명의로 한국 의병대 대표 자격으로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앞으로 1921년 10월 25일자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보고서에는 자유시 사변으로 피해를 입은 한인 무장 부대 대표의 입장에서 자유시 사변의 상세한 경과와 함께 현재 체포 수감 중인 한인 의병들을 석방하고 자유시 사변을 재심해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코민테른 집행위원회는 1921년 10월 말부터 자유시 사변을 포함한 한인 사회주의자들의 분쟁을 다룰 한국위원회를 설립하였다. 허재욱은 한국위원회에 참여하여 자유시 무장 충돌 사건의 피해자 측 대표로 증언하였고, 고려혁명군정의회 위원인 김하석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허재욱의 이후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상훈과 추모

1991년 대한민국 정부는 허재욱의 공적을 기려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임경석,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역사비평사, 2003)
  • 윤상원, 「러시아 지역 한인의 항일 무장 투쟁 연구(1918~1922)」(고려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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