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서

한자 韓京瑞
영문 Han Koungsoe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3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활동 시기/일시 1920년
활동 시기/일시 1921년
활동 시기/일시 1924년 1월
출생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종성군
활동지 중국 길림성 훈춘현
활동지 러시아 연해주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신민단 군무부장
정의

1920년대 러시아 연해주 지역 한인 빨치산 부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한경서(韓京瑞)[1883~?]는 1920년대 초 신민단 군무부장으로 중국 훈춘 지역과 러시아 연해주 등지에서 무장 투쟁을 벌인 독립운동가이다. 중국과 러시아 국경 지역인 초모정자를 근거지로 활동했으며, 1921년 7월에는 러시아 수이푼 지역의 빨치산 부대를 통합하여 우리동무군에 합류하여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한경서는 1883년 함경북도 종성에서 태어났다. 신민단의 군무부장으로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 중국 길림성 훈춘과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한경서가 소속된 신민단은 기독교 일파인 성리교(聖理敎) 계열의 신도들이 3·1 운동 직후 중국 북간도와 러시아 연해주에서 결성한 종교 단체였지만, 항일 무장 투쟁을 위한 장정 모집과 군자금 모집에 주력하였다. 특히 산하에 독자적인 무장 부대를 조직했는데, 한경서 부대를 비롯하여 박경철 부대, 고상준 부대, 신우여 부대 등이 있었다. 그리고 신민단은 1919년 5월부터 한인사회당의 비밀 군사 조직으로 활동하였다. 한경서신민단 부대는 1920년 내내 중국과 러시아 국경 지역인 초모정자(草帽頂子)를 근거로 중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무장 투쟁을 벌였다.

1920년 하반기 일본군의 토벌을 피하고 한인 빨치산 부대의 통합을 위해 중국 지역의 한인 무장 부대들이 러시아 연해주 지역으로 이동하자, 한경서의 부대도 1921년 1월 러시아의 이만에 도착했다. 그러나 다른 빨치산 부대들이 러시아 아무르주 자유시로 이동한 데 반해 한경서수이푼 지역에 잔류하는 무장 부대를 통합하려는 한인사회당의 계획에 따라 다시 러시아 연해주 수이푼 지역으로 돌아왔다. 수이푼 지역으로 돌아온 한경서는 일본군의 토벌을 피해 중국령 훈춘에서 러시아 수이푼 지역으로 이동해 온 독립군 부대들을 규합하여 통합된 빨치산 부대를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그 결과 1921년 7월 한경서의 부대는 최경천의 한민회와 신우여가 이끄는 신민단 부대와 함께 수이푼 지역에 이미 존재하던 우리동무군[솔밭관 공산당부대]에 합류하여 러시아 백위군 및 일본군과 지속적으로 전투를 벌였다. 1922년 11월 연해주 해방 전쟁이 종결되고 한인 빨치산 부대의 즉각 해산과 무장 해제가 진행되자, 한경서신우여와 함께 러시아 연해주를 떠나 기존에 활동하던 국경 지역의 초모정자로 돌아가서 항일 운동을 계속하였다. 1924년 1월 적기단 간부 회의에서 중국 훈춘 지역을 담당하는 통신부장에 선출되었다.

참고문헌
  • 『한국 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창작과비평사, 1996)
  • 윤상원, 「러시아 지역 한인의 항일 무장 투쟁 연구(1918~1922)」(고려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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