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Цой Пётр Семёнович |
---|---|
한자 | 崔在亨 |
영문 | Choi Jaehyung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러시아 연해주지방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858년 |
---|---|
활동 시기/일시 | 1893년 |
활동 시기/일시 | 1908년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
활동 시기/일시 | 1911년 |
활동 시기/일시 | 1918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10일 |
몰년 시기/일시 | 1920년 4월 |
추모 시기/일시 | 1962년 |
출생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경원 |
활동지 | 러시아 연해주 |
원어 항목명 | Цой Пётр Семёнович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권업회 회장|대한민국 임시 정부 재무총장 |
근대 개항기 러시아 초기 한인 이주민 지도자이며 연해주 4월 참변 당시 일제에 학살당한 독립운동가.
최재형(崔在亨)[1858~1920]은 러시아 초기 한인 이주자로, 러시아 연해주에서 활동한 한인 지도자이다. 러시아 이름은 최 표트르 세묘노비치이며, 도헌을 지냈기 때문에 최도헌(崔都憲)으로도 불렸다. 재러 한인들의 지도자로, 한인들을 따뜻하게 지켜주었다는 의미에서 페치카 최로도 불렸다.
1858년 함경북도 경원(慶源)에서 태어난 최재형은 1869년 아버지 최흥백, 형 알렉세이와 함께 러시아 연해주 지역 지신허 마을로 이주했다. 포시예트에서 러시아 해군 병사에게 발탁되어 견습 수부 및 러시아 군대의 통역을 시작한 이후 러시아 해군 소위, 경무관 등을 역임하였다. 1895년에 통역을 그만둔 후에는 러시아 연추 지역 한인의 대표인 도헌(都憲)[군수에 해당하는 직책]에 임명되었고 이후 한인을 대표하여 니콜라이 황제 즉위식에 참석하는 등 한인 사회의 존경을 받았다. 최재형은 러시아 군대[노보키예프스크]의 군수업자로 큰 재산을 모았으며, 1908년 봄에는 이범윤, 이위종, 안중근 등과 동의회(同義會)를 조직하여 산하 의병 부대의 함경북도 국경 지대 공격을 후원하였다.
이후 최재형은 대동공보사 사장, 권업회 회장을 거쳐 1914년에는 한인아령이주 50주년 기념회 회장을 지냈다. 1918년 6월에는 이동휘와 함께 전로한족중앙총회의 명예 고문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3·1 운동 이후에는 대한국민의회의 외교부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했고, 상해 대한민국 임시 정부 재무총장에 선임되기도 하였다. 1920년 4월 4~5일 밤 일본군이 연해주 지역의 러시아 혁명군과 한인들을 공격하여 만행을 저지른 4월 참변 당시 니콜스크우수리스크에서 김이직, 엄주필, 황 카피톤 등과 함께 체포되어 학살되었다.
1962년 대한민국 정부는 최재형의 공적을 기려 건국 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