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러시아]

한자 蔡英
영문 Chae Young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1년
활동 시기/일시 1920년
활동 시기/일시 1921년
활동 시기/일시 1923년
활동 시기/일시 1924년
몰년 시기/일시 1926년
추모 시기/일시 2002년
출생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거주|이주지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
활동지 러시아 연해주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대한국민혈성단 사령관
정의

1920년대 러시아 연해주 지역 한인 빨치산 부대 지휘관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채영(蔡英)[1881~1926]은 북간도를 거쳐 1920년대 초반 러시아 연해주에서 한인 빨치산 부대 지휘관으로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채영은 188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 직후 북간도에서 조선독립기성회(朝鮮獨立期成會)가 결성되었는데, 조선독립기성회의 주요 인맥은 1910년대 간민교육회(墾民敎育會)와 간민회(墾民會) 활동을 통해 북간도 한인 사회의 자치와 민족주의 교육,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인물이 대부분이었다. 조선독립기성회는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자, 임시 정부를 추대하기로 하면서 회의 명칭을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로 개칭하고 대한국민회 규칙에 “임시 정부 법령 범위 내에서 독립 사업 완성을 기도함을 목적”한다고 명시하여 임시 정부 직할의 독립운동 단체임을 명백히 선언하였다. 대한국민회는 길림성 연길현(延吉縣)에 본부를 두고 8개 지방회와 지방회 산하에 130여 개 지회를 두어 북간도 전역의 한인 사회 자치와 독립군 편성, 군자금 모집 등 폭넓은 항일 운동을 추진하였다. 채영은 대한국민회 조직 후 총부(總部)에 배속되어 무관학교(武官學校) 설비 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19년 9월 만주 훈춘(琿春)에서 홍범도(洪範圖)·이용(李鏞) 등과 함께 대한국민회 산하에 결사대를 조직하고 무기를 구입하여 국내 진공 계획을 세웠다.

채영은 1920년 초 러시아 니콜리스크에서 강국모(姜國模)·한희진(韓熙鎭) 등과 대한국민혈성단(大韓國民血誠團)을 조직하고 사령관으로 활동하였으며, 1920년 3월 연길현 하마탕에서 북간도 동부와 훈춘, 러시아의 각 독립단 대표자 회의가 개최되자 홍범도·구춘선(具春先)·이범윤(李範允)·황병길(黃丙吉) 등과 함께 참석하여 각 독립단의 통일 문제를 논의하였다. 1921년에는 러시아의 원조하에 한인 연합 부대인 고려혁명군단(高麗革命軍團)에 참여하여 고려혁명군사관학교(高麗革命軍士官學校)의 교관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6월 러시아 흑룡주(黑龍州) 스보보드니에서 자유시 참변이 발생할 당시에는 혈성단을 이끌고 대한의용군(大韓義勇軍)에 참여하여 참모부원으로 러시아 군대와 전투를 벌였다. 1923년 중국 상해에서 열린 국민대표회의에 참석하였고, 1924년 상해에서 국민위원회(國民委員會)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채영은 러시아 우수리스크 연변의 이만에 돌아와 활동하다가 1926년 러시아와 중국 국경인 포그라니치나야역에서 자객에게 살해되었다.

상훈과 추모

2002년 대한민국 정부는 채영의 공적을 기려 건국 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박 보리스 드미트리예비치·부가이 니콜라이, 『러시아에서의 140년간-재러 한인 이주사』(김광환·이백용 옮김, 시대정신, 2004)
  • 윤상원, 「러시아 지역 한인의 항일 무장 투쟁 연구(1918~1922)」(고려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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