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응순

한자 趙應順
영문 Jo Eungso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4년
활동 시기/일시 1907년
활동 시기/일시 1908년 10월
활동 시기/일시 1918년
활동 시기/일시 1920년 10월
활동 시기/일시 1920년 12월
활동 시기/일시 1921년 5월
활동 시기/일시 1921년 9월
활동 시기/일시 1922년
추모 시기/일시 2017년
출생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남도 갑산군 회사면 도화리
거주|이주지 러시아 연해주
활동지 러시아 연해주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조응순(趙應順)[1884~?]은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의병 활동에 가담한 후 한인사회당상해파 고려공산당에서 활동하며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김열(金閱)·조일비(趙一飛)·오주(五周)·왕대방(王大方)이라는 가명으로도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조응순은 1884년 함경남도 갑산군 회사면(會社面) 도화리(桃花里)에서 태어났으며, 1906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하였다. 1907년에는 전재익 의병 부대에 입대하여 활동하였다. 1908년 10월에는 러시아 연해주 연추 지역에서 안중근 등 11명과 함께 단지 동맹(斷指同盟)에 참여하였다. 1918년 한인사회당에 입당하여 활동하였다. 1920년 6월 2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표된 한인노동연합회 발기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9명의 발기인 중 한 명으로, 박진순과 함께 한인사회당을 대표하였다. 1920년 10월 3일부터 11일까지 러시아 옴스크에서 열린 제1회 전로고려인대회에 발기인 자격으로 참석하여 예비회의 임시 의장을 맡았다. 1920년 12월 2일 러시아 치타에서 열린 극동공화국 영토 내 한인 사회주의 단체들의 대표자 회의에 참석하였다. 대표자 회의를 통해 러시아공산당 극동국 한인부가 조직되었고, 조응순은 중앙집행부 후보 위원에 선출되었다. 또한 극동국 한인부 기관지 『노농신보(勞農新報)』의 편집부원으로 활동하였다. 조응순은 극동국 한인부 조직지도원으로 1921년 1월 러시아 공산당 극동국 관할로 넘어온 베르흐네우딘스크 고려공산당의 조직 재편을 지도하였다. 1921년 5월 중국 상해에서 열린 상해파 고려공산당 창립 대회에 노령 대표 자격으로 참석하였다. 1921년 9월 자유시 사변의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성토문에 서명하였고, 관련자를 직접 처벌하기 위해 중국 하얼빈에서 결성된 테러 단체 결사단에 참여하였다. 1922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경성지법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조응순의 이후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상훈과 추모

2017년 대한민국 정부는 조응순의 공적을 기려 건국 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 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창작과비평사, 1996)
  • 임경석,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역사비평사, 2003)
  • 윤상원, 「러시아 지역 한인의 항일 무장 투쟁 연구(1918~1922)」(고려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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