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맹선

한자 趙孟善
영문 Jo Mangsu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2년
활동 시기/일시 1905년
활동 시기/일시 1918년 1월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3일
활동 시기/일시 1920년 가을
활동 시기/일시 1921년
몰년 시기/일시 1922년
추모 시기/일시 1962년
출생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황해도 평산
활동지 러시아 연해주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대한독립단 단장
정의

1920년대 초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한인 빨치산 부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조맹선(趙孟善)[1872~1922]은 1905년부터 황해도 평산에서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고, 중국 서간도와 러시아 연해주 등지에서 한인 빨치산 부대를 지휘한 독립운동가이다.

활동 사항

조맹선은 1872년 황해도 평산(平山)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박정빈, 우병열, 이진룡과 함께 고향인 평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참모장으로 활동하였다. 1910년 일제 강점 이후 이진룡과 함께 중국 만주로 망명하여 압록강 연안의 장백현 일대에서 무장 투쟁을 계속하였다. 1918년 1월 신봉황, 차도선 등과 중국 목릉현 팔면통에서 비밀 결사 충의사를 조직하고 국내 진격을 계획하였다.

1918년 2월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한인 해외망명자회의가 열리자 중국 서간도에 있던 조맹선, 양기탁, 주진수, 김규환 등은 양기탁을 대표로 파견하였다. 양기탁은 해외망명자회의에서 이동휘가 주장한 한인사회당 조직에 동의한 후 돌아왔다. 이후 조맹선은 동료들과 함께 이동녕이 주도하는 한족회의 실력 양성론에 반대하여 1919년 3월 13일 중국 서간도 유하현에서 대한독립단을 조직하고 단장이 되었다. 대한독립단은 한인사회당이 러시아 하바롭스크에 설립하려는 사관 학교에 대한독립단의 생도 50~60명을 파견하였고, 홍범도를 사령관으로 하는 빨치산 부대를 조직하려는 이동휘의 계획에 따라 대한독립단 부대를 순차적으로 러시아 연해주로 이동시키지만 대한국민의회의 방해로 실패하였다. 1920년 가을 대한독립단 단장인 조맹선이 직접 100여 명의 인원을 이끌고 러시아 연해주 아누치노로 이동하여 강국모혈성단(血誠團)에 합류하였다. 그러나 빨치산 부대를 러시아 이만으로 이동시키는 문제로 빨치산 부대들이 분열하자, 한인사회당의 계획에 따라 혈성단에서 탈퇴해 러시아 이만으로 이동하여 한인사회당의 지휘를 받는 신민단 부대와 합동하였다. 조맹선은 합동 부대의 사령관이 되었고, 부사령관은 박 그레고리와 최파샤가 맡았다. 이후 러시아 자유시로 이동했고, 자유시 사변 당시 이르쿠츠크파와 대한국민의회에 반대했다. 조맹선은 1922년 러시아 아누치노에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2년 대한민국 정부는 조맹선의 공적을 기려 건국 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반병률, 『성재 이동휘 일대기-조국 광복만을 위해 살다 간 민족의 거인』(범우사, 1998)
  • 임경석,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역사비평사, 2003)
  • 윤상원, 「러시아 지역 한인의 항일 무장 투쟁 연구(1918~1922)」(고려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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