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만

한자 鄭淳萬
영문 Jeong Sunma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6년
활동 시기/일시 1906년 10월
활동 시기/일시 1907년
활동 시기/일시 1908년
활동 시기/일시 1908년
활동 시기/일시 1908년
활동 시기/일시 1908년
활동 시기/일시 1909년
활동 시기/일시 1910년 1월
활동 시기/일시 1911년 2월 8일
활동 시기/일시 1911년 5월 24일
몰년 시기/일시 1911년 6월 21일
추모 시기/일시 1986년
출생지 대한민국 충청북도 청원군 옥산면 덕촌리
활동지 중국 간도 용정
활동지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
성격 민족 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공립협회 블라디보스토크 지방회 부회장
정의

개항기 말 러시아 연해주에서 언론과 교육을 통한 애국 계몽 운동을 하였던 민족 운동가.

개설

정순만(鄭淳萬)[1876~1911]은 구한말 용정에서 이상설과 함께 서전서숙을 설립하였다. 연해주로 옮겨서는 『해조신문(海潮新聞)』을 발행하였다. 『대동공보(大東共報)』에 주필로 있으면서 교육을 통한 민족의식 고취와 애국 계몽 운동에 힘썼다. 홍범도, 윤일병과 함께 국내 진격을 논하던 폭도파 모임에도 참여하는 등 무장 독립 투쟁론도 견지하였다.

활동 사항

정순만은 1906년 봄 이상설, 이동녕 등과 북간도로 망명하였고, 1906년 10월 이상설과 함께 간도 용정에서 서전서숙(瑞甸書塾)을 설립하였다. 1907년 헤이그 특사가 계획되자 이상설을 지원하기 위해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로 옮겨, 블라디보스토크 한민회 회장 김학만과 함께 특사 지원금 18,000원을 모금하기도 하였다. 한인거류민회의 총무 겸 서기로 있으면서 국내와 연해주 한인 사회를 잇는 가교 역할도 맡았다.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한인들 위하여 『해조신문』을 발행하였고, 논설 지면을 통해 교육 특히 여성 교육을 강조하였다.

1908년 『대동공보(大東共報)』가 창간되자 윤필봉, 미하일로프와 함께 주필을 맡았다. 1908년 11월 15일 공립협회에 가입하고 1909년 블라디보스토크 지방회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08년 5월경 항일 의병을 추진하기 위한 의병 결사 단체인 동의회(同義會)의 창립에 참여하였다. 안중근 의거를 계획 단계에서부터 도왔으며, 의거 후 안중근이 일제 사법부로 이관되는 것을 막고 변호사를 선임해 주기도 하였다. 1910년 1월 양성춘 사건과 관련하여 러시아 당국에 체포되었다가 1911년 2월 8일 풀려났다. 1911년 5월 24일 엄인섭, 윤일병, 홍범도 등과 국내 진격을 위한 의병 부대 창설을 논의했던 폭도파(暴徒派)에 참여하였다. 양성춘 사건의 여파로 1911년 6월 21일 피살되어 짧은 생을 마쳤다.

상훈과 추모

1986년 대한민국 정부는 정순만의 공적을 기려 건국 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반병률, 『성재 이동휘 일대기-조국 광복만을 위해 살다 간 민족의 거인』(범우사, 1998)
  • 박걸순, 「연해주 한인 사회의 갈등과 정순만의 피살」(『한국독립운동사연구』34,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