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정

한자 張道政
영문 Jang Dojung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6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7월
활동 시기/일시 1920년 1월
활동 시기/일시 1920년 4월
활동 시기/일시 1920년 12월
활동 시기/일시 1921년 3월
활동 시기/일시 1921년 4월
활동 시기/일시 1921년 11월
활동 시기/일시 1923년 6월
몰년 시기/일시 1941년 6월 4일
추모 시기/일시 2009년
활동지 러시아 연해주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적기단 정치부장
정의

일제 강점기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장도정(張道政)[1896~1941]은 1910년 말부터 1920년대에 걸쳐 러시아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러시아 치타에서 극동국 한인부 지도자로 활동하며 전한의병대회를 준비하고 대한의용군을 조직하였다. 송한석(宋寒石)·장두정(張斗正)·장기초(張基楚)·장도정(張道正) 등의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장도정은 1919년 7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한인촌을 근거지로 일세당을 조직하고 『일세보』라는 신문을 발간하였다. 일세당 간부는 장도정을 비롯하여 김진, 전일, 최성우, 한용헌 등이었다. 1920년 1월 당명을 한인사회당으로 개칭하였는데, 상해 한인사회당과 구별하여 연해주 한인사회당으로 불렸다. 1920년 4월 초 연해주 참변이 발생하자 연해주 한인사회당원 대부분은 러시아 아무르주로 이동하여 아무르주 한인공산당을 조직하였다. 장도정은 아무르주 한인공산당의 의사부장을 맡아서 활동하였다.

1920년 12월 2일 러시아 치타에서 열린 극동공화국 영토 내 한인 사회주의 단체들의 대표자 회의에 참석하였다. 대표자 회의를 통해 러시아공산당 극동국 한인부가 조직되었고, 장도정계봉우, 박애, 김진, 박창은과 함께 중앙집행부에 선출되어 조직부장을 맡았다. 1921년 1월 박애, 이다물과 함께 극동국 한인부가 주도한 전한의병대회 소집위원회 위원으로 선정되어 3월에 개최된 전한의병대회를 준비하였다. 극동부 한인부의 주도권을 인정하지 않는 코민테른 극동비서부의 결정에 따라 장도정은 3월 29일 박애, 계봉우, 김진, 박창은과 함께 당에서 제명되었고 아무르주 한인공산당도 해체되었다. 아울러 코민테른 극동비서부는 4월 말 극동국 한인부 지도자들을 명령불복종에 따른 반혁명 혐의로 체포하였다. 전한의병대회를 통해 조직된 대한의용군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러시아 이르쿠츠크의 코민테른 극동비서부에 파견됐던 장도정은 그곳에서 바로 체포되었다가 1921년 11월 석방되었다. 장도정은 1923년 6월부터 적기단 정치부장이 되었고, 1924년 3월에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러시아 연해주 조선인공산당책임자연합대회에서 준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41년 6월 4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9년 대한민국 정부는 장도정의 공적을 기려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 유공자 공훈록』(국가보훈처, 1986)
  • 반병률, 『성재 이동휘 일대기-조국 광복만을 위해 살다 간 민족의 거인』(범우사, 1998)
  • 임경석,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역사비평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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