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영

한자 張基永
영문 Jang Giyeong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0년
활동 시기/일시 1907년
활동 시기/일시 1908년 9월
활동 시기/일시 1913년
활동 시기/일시 1917년 7월
활동 시기/일시 1921년 3월
활동 시기/일시 1923년 2월
추모 시기/일시 2014년
활동지 러시아 연해주, 아무르주 일대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적기단 비서 위원장
정의

1910년대 러시아 연해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장기영(張基永)[1890~?]은 1910년대 만주 및 러시아 연해주 일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활동 사항

장기영은 1907년 신민회에 가입해 활동했으며, 1908년 9월 평양 대성학교(大成學校) 설립에 참여하여 교사가 되었다. 1913년에는 만주로 건너가 길림성(吉林省) 왕청현(汪淸縣) 나자구(羅子溝) 대전자(大甸子)에서 동림무관학교(東林武官學校) 설립에 참여하여 교관이 되었다. 1911년 수이푼 신영동사범학교, 1913년부터 1914년까지 국자가 광성학교[일명 소영자학교(小營子學校)]와 나자구 대구학교[일명 나자구 무관학교(羅子溝 武官學校)] 교사, 1916년 왕청현 사립 제1 고등국민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장기영은 1917년 7월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新韓村)에서 『한인신보』 기자가 되었으며, 12월 하바롭스크에서 전로한족총회의 통합에 참여하여 총무 겸 서기로 활동했다. 1920년 2월 일본의 침략 정책을 비판하고 간도 출병 일본군의 항명을 권유하는 “일본 병사 제군에게 고한다”라는 제목의 격문을 배포하였으며, 1920년 『한인신보』 주필, 1921년 3월 신민단 모연반장(募捐班長)으로 활동했다. 1921년 3월 러시아 아무르주 마사노프에서 전한의병대회 건립에 참여하고 군사위원이 되었다. 5월에 장기영은 이르쿠츠크에서 열린 고려공산당 창립 대회에 참석했으나, 상해파를 지지하는 발언으로 인해 대회 참석 자격을 박탈당하고 축출되었다. 1921년 말 모스크바에서 고려공산당 임시연합중앙위원회의 당무에 종사했다. 1922년 10월 베르흐네우딘스크 고려공산당 연합대회에 출석하여 북간도 담당 제1비서부 중앙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3년 2월 한국의용군사회(韓國義勇軍事會) 대표로 국민대표회의에 참석해 개조파로 활동하였다. 1923년 10월부터 1925년까지 장기영은 액목현(額穆縣)에서 적기단(赤旗團) 비서 위원장·집행 위원으로 활동하며 고려공산당 양파 통합에 앞장섰다. 정확한 사망 연도는 확인되지 않는다.

상훈과 추모

2014년 대한민국 정부는 장기영의 공적을 기려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계봉우, 「아령실기」(『독립신문』, 1920. 2. 20~1920. 4. 12)
  • 『한국 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창작과비평사, 1996)
  • 임경석,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역사비평사, 2003)
  •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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