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李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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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 Lee Sung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러시아 연해주지방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88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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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4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11월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7월 |
활동 시기/일시 | 1924년 7월 |
활동 시기/일시 | 1924년 9월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27년 |
학교|수학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활동지 | 러시아 연해주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고려공산당 중앙집행위원 |
일제 강점기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한인 빨치산 부대에서 활동한 재러 한인 독립운동가.
이성은 1888년 태어났다. 1913년 서울 상동학교에서 근대 교육을 받았고, 1914년 중국 동만주 지방으로 망명했다. 1919년부터 이성은 사회주의자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1919년 11월 러시아 옴스크시에서는 옴스크 한인공산당이 결성되었다. 이피득의 주도로 결성된 옴스크 공산당은 시베리아 전역을 대상으로 여러 활동을 벌였다, 그 대표적인 활동 중의 하나가 기관지 『새벽북』을 창간한 것인데, 이성은 『새벽북』의 편집인이었다. 이성은 1920년 중반 옴스크 한인공산당이 둘로 분열할 때 민족주의자들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가졌던 청년 사회주의자 그룹에 가담했다. 1920년 7월 이성은 이르쿠츠크에서 열린 전로한인공산당 대표원회의에 참가해 의장으로서 역할을 했고, 전로한인공산당 중앙총회의 중앙위원으로 선정되었다.
1920년 12월 16일 이성은 전로한인공산당 중앙총회 대표로서 러시아 공산당 극동국 한인부와 전한공산당 창립 문제에 대해 교섭했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결국 1921년 5월 전로한인공산당 중앙총회 주도로 이르쿠츠크에서 열린 고려공산당 창립대회에 참가하여 중앙 집행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이때부터 이성은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이성은 1923년 조선 내부에 공산당을 조직할 책무를 가진 고려총국 위원으로 선임되었고, 1924년 7월 오르그뷰로의 지시에 따라 국내로 들어왔다. 이후 국내 공산주의자들과 협의하여 통일된 조선공산당을 건설하려고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1924년 9월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 이성은 1927년 출옥 후 러시아로 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