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진

한자 李範晉
영문 Lee Beomji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레닌그라드주 상트페테르부르크시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52년 9월 3일
활동 시기/일시 1879년
활동 시기/일시 1895년
활동 시기/일시 1900년
활동 시기/일시 1907년
몰년 시기/일시 1911년 1월
추모 시기/일시 1991년
출생지 대한민국 서울 낙동
활동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재러시아 전권 특명 공사
정의

구한말 재러시아 전권 특명 공사로 경술국치 이후 자결한 외교관이자 독립운동가.

개설

이범진(李範晉)[1852~1911]은 조선 정부의 법무대신 등 주요 관직을 역임하고 1900년 주러시아 공사로 임명되었다.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러시아에 온 이상설과 이준의 외교적 활동을 지원하였다.

가계

이범진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성삼(聖三)이다. 훈련대장 이경하(李景夏)의 아들이다. 부인 풍양 조씨(豐壤趙氏)이며 2남 1녀의 자식을 두었다. 큰아들은 이기종(李璣鍾)이며, 둘째 아들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가했던 이위종(李瑋鍾)이다.

활동 사항

이범진은 1852년 서울 낙동에서 이경하(李景夏)의 아들로 태어났다. 1879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1887년에 협판내무부사(協辦內務府事)가 되었다. 1895년 명성황후가 친러 정책을 표방할 때 농상공부 대신 서리가 되어 친러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친러파로 지목되어 사임하였다. 1895년 10월에 춘생문 사건을 일으키는 데 주역이 되었다가 실패하고 중국 상해로 일시 망명하였다. 1896년 2월 아관 파천이 일어나자 김홍집(金弘集)·정병하(鄭秉夏) 등을 몰아내고 아관 파천 내각의 법무대신 겸 경무사가 되었다. 이완용(李完用) 등의 박해를 받아 신변이 위험해지자 1897년에 자원하여 주미 공사로 가서 3년간 워싱턴에서 외교 활동을 했다. 1900년에는 주러시아 공사로 전임되어 독일·오스트리아·프랑스 공사를 겸임하였다. 이범진이 주러시아 공사로 있을 때 러시아는 대한제국의 친러 수구파 정부에게 용암포(龍岩浦)항의 조차(租借)를 요구하였고 대한제국 정부에서는 이를 허락하여 용암포 조차를 승인하는 공문을 이범진에게 보냈다. 이범진은 용암포 조차를 강경하게 반대하고 이 공문을 러시아 정부에 전달하지 않았다. 대한제국 정부는 이범진을 파면하고 참서관 김인석(金仁錫)을 대리 공사로 임명하여 공문을 러시아 정부에 전달한 뒤 이범진을 공사로 복직시켰다. 1905년 11월 일제가 무력으로 고종과 대신들을 위협하여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하고 외교권을 박탈한 다음 각국 주재 공사들을 소환하였다. 이범진은 일제의 소환에 불응하고 양국 황제의 밀사(密使) 자격으로 계속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체류하면서 국권 회복을 위하여 활동했다. 1907년에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이 파견한 밀사로서 이상설(李相卨)과 이준(李儁)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자 아들 이위종(李瑋鍾)을 임원 겸 통역으로 동반하게 하였다. 이범진은 러시아 황제에게 후원을 요청하여 러시아 호위병의 보호를 받으면서 헤이그에 도착할 수 있게 하고, 러시아 대표의 알선으로 각국 신문 기자들에게 조선 밀사들이 연설할 기회를 만드는 등 헤이그 밀사 파견과 활동을 지원하였다. 1908년에 연해주에서 의병을 조직할 때 지원금을 보냈으며, 1909년에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계동학교(啓東學校), 세동학교(世東學校), 신동학교(新東學校)를 통합하여 큰 규모의 한민학교(韓民學校)를 설립할 때도 1천 루블을 보내 재러 한인들의 교육, 구국 운동을 지원하였다. 이범진은 1910년 8월 경술국치 이후 자결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1년 대한민국 정부는 이범진의 공적을 기려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박 보리스 드미트리예비치·최 발렌틴 발렌티노비치, 『사진으로 본 러시아 한인의 항일 독립운동』(국사편찬위원회·재러독립유공자후손협회·주러시아연방 한국대사관, 2004)
  • 윤상원, 「러시아 지역 한인의 항일 무장 투쟁 연구(1918~1922)」(고려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0)
  • 계봉우, 「아령실기」(『독립신문』, 1920. 2. 20~1920.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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