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

한자 李發
영문 Lee Bal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블라디보스토크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51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활동 시기/일시 1920년
몰년 시기/일시 1928년 4월 20일
추모 시기/일시 1995년
출생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남도 단천
거주|이주지 중국 훈춘
거주|이주지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
활동지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에서 노인단을 조직하여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이발(李發)[1851~1928]은 이동휘(李東輝)의 아버지이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노인단(老人團)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이발은 함경남도 단천(端川) 출신이다. 이승교(李承喬), 이발(李撥)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1902년 아들 이동휘가 강화도 진위대장으로 부임하게 되자 서울로 이사하였으며, 서울에서 보성각에 취직하여 새로 창립되는 신학교들의 한문 교과서를 편집·발행하였다. 아울러 『대한매일신보』의 직원으로 일하기도 하였다. 1910년 이후 며느리인 이동휘의 부인 강정혜와 셋째 손녀 이경순, 손자 이우석 등과 함께 중국 훈춘(琿春)에 살았으며, 1915년에는 이동휘의 의견에 따라 왕청현(汪淸縣) 하마탕의 조선인 촌락에 거주하였다. 1917년 늦은 봄에 목릉현(穆稜縣) 팔면통(八面通)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1918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하였다. 1919년 3·1 운동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김치보(金致寶)·윤여옥(尹餘玉)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원조할 목적으로 46세 이상의 남녀를 중심으로 노인단을 조직하였다. 1919년 5월 31일 아침 이발은 동지 네 명과 함께 노인단의 대표로 경성에 가서 종로 보신각(寶信閣) 앞에서 태극기를 휘두르며 만세를 부른 후 칼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결을 기도하였다.

이발은 1920년 3월 1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한국민회 주최로 독립 선언 기념 축하식을 개최하고자 할 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임원은 부회장 김식(金軾), 의식부장 장도정(張道政), 경찰부장 김필수(金弼秀), 재무부장 김치보, 접대부장 김 미하일 등이었다. 3월 1일의 행사 시 배포된 인쇄물에 이발의 호소문이 게재되었고, 일제는 1개 소대를 파견하여 이발을 체포하였다. 그 후 이발은 석방되어 둘째 손녀 이의순과 함께 상해로 이사하였다가 1923년 이동휘와 함께 다시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하였다. 1928년 4월 20일 7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5년 대한민국 정부는 이발의 공적을 기려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계봉우, 「아령실기」(『독립신문』, 1920. 2. 20~1920. 4. 12)
  • 『독립유공자 공훈록』13(국가보훈처,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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