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물

한자 李多勿
영문 Lee Damul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2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활동 시기/일시 1920년
활동 시기/일시 1921년 1월 16일
활동 시기/일시 1922년 3월 18일
몰년 시기/일시 1923년
추모 시기/일시 2002년
출생지 러시아 연해주
거주|이주지 러시아 연해주
활동지 러시아 연해주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1920년대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이다물(李多勿)[1892~1923]은 러시아 옴스크, 치타, 이르쿠츠크 등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옴스크 한인공산당에 가입하여 한인사관학교 설립을 주도했으며, 러시아 공산당 극동국 한인부 소속으로 기관지 발간 사업에 참여하였다. 극동국 한인부가 소집한 전한의병대회 준비 위원으로 선정되어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이다물은 1919년 11월 창립된 러시아 옴스크 한인공산당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이다물은 안경억, 김표도르와 함께 러시아 옴스크 지역 국민회와 청년회의 조력을 얻어 군사 간부를 양성하기 위한 한인사관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1920년 중엽 지역 국민회와의 협력 문제로 옴스크 한인공산당이 분열하였고, 국민회와의 협력을 주장한 이다물 등 기존 간부들이 반대파에 의해 밀려났다. 이다물은 1920년 7월 열린 전로한인공산당 제1차 대표원회의에서 전로한인공산당 중앙 위원에 선출되었지만 참석하지 않고, 러시아 치타에 있는 러시아 공산당 극동국 산하 한인부에서 활동하며 극동국 한인부 기관지 『노농신보(勞農新報)』 번역원으로 일했다. 1920년 12월 21일 극동국 한인부는 중국과 러시아 연해주에 있는 한인 빨치산 부대들의 대표를 소집하여 전한의병대회를 조직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다물은 1921년 1월 16일 박애, 장도정과 함께 전한의병대회 소집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자유시 사변 당시 이동휘한인사회당을 지지했던 이다물채영 등과 함께 러시아 적군에게 붙잡혀 이르쿠츠크로 이송되었고, 러시아 제5 군단 산하 한인여단에 배속되었다. 1921년 12월 이르쿠츠크로 온 이동휘고려혁명군의 극동 지역으로의 이동을 추진하였고, 이 계획을 채영, 황하일, 송세주, 김 표도르 등과 함께 진행하다가 1922년 3월 18일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이다물은 군법 재판을 받고 러시아 이르쿠츠크의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가 1923년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2년 대한민국 정부는 이다물의 공적을 기려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반병률, 『성재 이동휘 일대기-조국 광복만을 위해 살다 간 민족의 거인』(범우사, 1998)
  • 임경석,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역사비평사, 2003)
  • 윤상원, 「러시아 지역 한인의 항일 무장 투쟁 연구(1918~1922)」(고려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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