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

한자 李剛
영문 Lee Kang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러시아 자바이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7년
활동 시기/일시 1908년
활동 시기/일시 1909년 1월
활동 시기/일시 1910년
활동 시기/일시 1911년 9월
활동 시기/일시 1914년
몰년 시기/일시 1964년 10월 13일
추모 시기/일시 1962년
출생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용강군
활동지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
활동지 러시아 시베리아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대동공보』 주필
정의

일제 강점기 러시아 연해주와 시베리아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이강(李剛)[1897~1964]은 미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뒤 러시아로 이주해 한글 신문인 『대동공보』의 기자와 주필을 지냈으며, 대한인국민회 지부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이강은 1878년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태어났다. 미국으로 건너가 고등교육을 받은 뒤 미국에서 결성된 공립협회에 참여했다. 이후 러시아로 이주해 1908년 11월 창간된 『대동공보』의 기자가 되었고 1909년 1월 주필 대행으로 활동했다. 1909년 1월 이강블라디보스토크에 공립협회 지부를 설치했다. 미국 본토의 공립협회가 하와이의 합성협회와 통합하여 1909년 국민회로 전환되자 러시아 지역의 공립협회 지부들도 국민회 극동 지회로 개편되었다. 1910년 국민회는 다시 대한인국민회로 발전했고 러시아 지역의 국민회도 대한인국민회로 변화했다.

러시아 지역 대한인국민회 활동을 주도한 이강정재관 등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 대한인국민회 내부의 갈등을 피해 운동의 중심을 러시아 자바이칼 지역의 치타로 이동했다. 1911년 9월 치타에 도착한 이강정재관 등은 치타대한인국민회 시베리아총회를 설치했다. 대한인국민회 시베리아총회는 대한인국민회 지방총회와 수청총회가 관할하지 않는 시베리아 지역을 대상으로 활동했다. 대한인국민회 시베리아총회는 결성 이후 기관지인 『대한인정교보』를 발행하며 시베리아 지역 한인들의 교육과 저축을 장려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대한인국민회 시베리아총회는 발전하여 1914년에는 시베리아에 21개의 지부가 창설될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러시아 정부가 일본에 우호적인 정책을 취하면서 대한인국민회 시베리아총회의 활동은 큰 타격을 받았다. 이강, 정재관을 비롯한 지도부가 러시아 헌병대에 체포, 투옥되었고, 『대한인정교보』도 폐간당했다. 이후 이강은 중국에서 활동하다가 1946년 귀국하였고, 1964년 10월 13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2년 대한민국 정부는 이강의 공적을 기려 건국 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박환, 『러시아 한인 민족 운동사』(탐구당, 1995)
  • 박민영, 『대한제국기 의병 연구』(한울, 1998)
  • 박 보리스 드미트리예비치·최 발렌틴 발렌티노비치, 『사진으로 본 러시아 한인의 항일 독립운동』2(관악, 2013)
  •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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