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

한자 李甲
영문 Lee Kab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7년
활동 시기/일시 1906년
활동 시기/일시 1908년
활동 시기/일시 1909년
활동 시기/일시 1911년
활동 시기/일시 1910년
몰년 시기/일시 1917년
추모 시기/일시 1962년
출생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평원군
학교|수학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학교|수학지 일본
활동지 러시아 연해주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신민회 창립위원
정의

일제 강점기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이갑(李甲)[1877~1917]은 1910년 러시아 연해주 지역 의병들의 통합 조직인 십삼도의군에 참여하며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으며, 1910년 고종의 밀서를 가지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파견되었다.

가계

이갑의 본명은 이휘선(李彙璿)이며, 호는 추정(秋汀)이다. 아버지는 이응오(李膺五)이다.

활동 사항

이갑은 1877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났다. 1896년 상경해 독립협회에 가입하였고, 1898년 11월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독립협회가 해산된 후 육군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군대를 나와 애국 계몽 운동에 가담했다. 1906년 10월 이종호와 함께 서우학회를 설립했고, 1907년 4월 양기탁(梁起鐸)·안창호(安昌浩)·전덕기(全德基)·이동휘(李東輝)·이동녕(李東寧)·유동열(柳東說) 등과 함께 창립위원이 되어 비밀 결사인 신민회(新民會)를 창립하였다. 1908년에는 서우학회와 한국흥학회를 통합하여 서북학회를 결성하였다.

이갑은 1909년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에 연루되어 일제에 체포되었으나 조건부로 3개월 석방되자 만주로 망명하여 상해로 이동했다. 이갑은 상해에서 러시아 사무관 고이에르와 만나 러시아의 협력과 지원에 대해 협의했고, 1909년부터 1911년까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동공보』『대양보』 출간에 관여하며 신민회와 건업회 활동도 활발하게 전개했다.

또한 1910년에는 러시아 연해주 지역 의병들과 행동을 함께했다. 1910년 이범윤은 자신의 조직인 창이회를 주축으로 연해주 의병들을 통합하려는 의도에서 십삼도의군을 조직하였다. 십삼도의군연해주와 북간도를 비롯한 전국 13도의 의병을 아우르는 단일 군단을 표방하였다. 추풍 지역 재피거우에서 결성된 것으로 보이며 중앙에 도총소를 두고 의병장 유인석을 도총재로 삼았다. 이갑은 이때 동의원의 직함을 띠고 참가했다. 1910년에는 러시아가 한일 병합을 찬성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고종의 밀서를 휴대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파견되었다.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동휘와 함께 서로 협력하여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 이갑은 1917년 중국 길림성 목릉현에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2년 대한민국 정부는 이갑의 공적을 기려 건국 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박환, 『러시아 한인 민족 운동사』(탐구당, 1995)
  • 박 보리스 드미트리예비치·최 발렌틴 발렌티노비치, 『사진으로 본 러시아 한인의 항일 독립운동』2(관악,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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