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율

한자 兪鎭律
영문 Yu Jinyul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6년
활동 시기/일시 1908년
활동 시기/일시 1908년 5월 28일
활동 시기/일시 1908년 11월
활동 시기/일시 1909년 4월
활동 시기/일시 1909년 10월 10일
활동 시기/일시 1911년 4월 26일
추모 시기/일시 2014년
출생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경흥군
학교|수학지 러시아 연해주
활동지 러시아 연해주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해조신문』 주필|『대동공보』 발행인
정의

일제 강점기 초기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유진율(兪鎭律)[1866~?]은 일제 강점기 초기 『해조신문(海朝新聞)』의 주필로 활동했다. 『해조신문』이 폐지되자 『대동공보(大東共報)』『대양보』에서 활동했다.

활동 사항

1866년 함경북도 경흥군에서 태어난 유진율은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블라고베셴스크에서 신학교를 졸업했다. 1908년 『해조신문』 창간 당시 주필로 활동했다. 『해조신문』이 폐간되자 1908년 5월 28일 유진율은 연해주 군지사에게 『대동공보』의 간행 승인을 요청했다. 1908년 11월 『대동공보』 창간 당시 유진율은 발행인 겸 편집인이었다. 1909년 4월 유진율은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창립된 청년돈의회(靑年敦義會)에서 활동했다. 1909년 10월 10일 대동공보사 사무실에서 유진률, 정재관, 이강, 윤일병, 정순만, 우덕순 등이 모인 가운데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위한 조직이 이루어졌다. 안중근 의사 의거 후 유진율, 최봉준, 김병학, 김학만 등에 의해 안응칠유족구제회가 결성되었다. 1910년 9월 『대동공보』가 폐간되자 1911년 4월 26일 유진율은 연해주 군지사에게 『대양보』 간행을 위한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1911년 7월 3일 유진율은 권업회 발기회가 블라디보스토크의 청년들이 만든 청년근업회(靑年勤業會)와 합칠 때 의원으로 활동했다.

상훈과 추모

2014년 대한민국 정부는 유진율의 공적을 기려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박환, 『러시아 한인 민족 운동사』(탐구당, 1995)
  • 계봉우, 「아령실기」(『독립신문』, 1920. 2. 20~1920.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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