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하

한자 劉東夏
영문 Yu Dongha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2년 1월 5일
활동 시기/일시 1909년 10월 26일
활동 시기/일시 1910년 2월 14일
몰년 시기/일시 1918년
추모 시기/일시 1988년
출생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남도 원산시 길명
활동지 러시아 연해주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러시아와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유동하(劉東夏)안중근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 암살에 가담한 독립운동가이다.

가계

유동하는 1892년 1월 5일 함경남도 원산시 길명(吉明)에서 유승렬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활동 사항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 유승렬[유경집(劉敬緝)이란 가명으로 활동]을 따라 러시아로 이주하였다. 1909년 10월 러시아 코트지포의 자택에서 유승렬이 안중근(安重根)·우덕순(禹德淳)·조도선(曺道先)·김성화·탁공규(卓公奎)와 더불어 구국 혁신을 맹세하는 걸 알고 자신도 서명할 것을 요청하여 연서(連書)한 뒤 ‘7인 동맹’을 조직하였다고 한다. 유동하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러시아 재무 장관 코코프초프(В.Н. Коковцов)와 회담하기 위하여 열차편으로 하얼빈[哈爾濱]에 오는 것을 탐지하고, 1909년 10월 21일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목적으로 하얼빈으로 출발할 때 동행하였다. 10월 26일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09년 11월 1일 안중근·우덕순·조도선·김성옥·김태식·장수명·탁공규·김성화·홍청담·정태호와 함께 여순(旅順)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1910년 2월 14일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유동하는 1918년 가을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군이 승리하자 조선 독립운동을 지원받기 위하여 볼셰비키 혁명군에 가담하였고, 러시아 백군 축출 활동을 전개하다가 11명의 한인 청년들과 함께 체포되어 사말리야강으로 끌려가 총살당하였다고 전한다.

상훈과 추모

1988년 대한민국 정부는 유동하의 공적을 기려 건국 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계봉우, 「아령실기」(『독립신문』, 1920. 2. 20~1920. 4. 12)
  • 신운용, 「우덕순의 민족 운동과 해방 공간 활동」(『한국민족운동사연구』81,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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