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열

한자 柳東說
영문 Yoo Dongyeol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9년 3월 6일
수학 시기/일시 1894년
수학 시기/일시 1903년
활동 시기/일시 1907년
활동 시기/일시 1910년 7월
활동 시기/일시 1911년
활동 시기/일시 1913년
활동 시기/일시 1918년 3월
활동 시기/일시 1918년 7월
활동 시기/일시 1919년
활동 시기/일시 1921년
활동 시기/일시 1935년
활동 시기/일시 1938년
활동 시기/일시 1945년 2월
활동 시기/일시 1945년 2월
몰년 시기/일시 1950년 10월 18일
추모 시기/일시 1989년
출생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북도 박천군 매화리 199번지
거주|이주지 러시아 연해주
학교|수학지 일본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미군정청 통위부장
정의

일제 강점기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유동열(柳東說)[1879~1950]은 대한제국 군대에서 복무했으며, 1910년 한일 병탄 후 망명하여 러시아 연해주, 중국 관내를 중심으로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유동설, 유청송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가계

유동열의 본관은 문화(文化), 호는 춘교(春郊)이다. 아버지는 유종정(柳淙楨)이다.

활동 사항

유동열은 1879년 3월 6일 평안북도 박천군 매화리 199번지에서 유종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1894년 일본으로 건너가 세이쇼학교[成城學校]를 거쳐 1903년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1904년 러일 전쟁 때 대한제국 파견 무관 자격으로 일본군에 종군하여 선천 부근에서 러시아군과 싸우기도 했다. 서울에 주둔해 있던 일본군 6군사령부에서 근무하다가 대한제국군에 복귀하였다. 대한제국군 무관학교와 유년학교 교관을 역임하고 1905년 군무국에서 참령(參領)으로 승진하여 시위대 기병대장과 참모국 제2 과장을 지냈다. 1907년 8월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비밀 결사 신민회의 반일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서북학회를 통해 계몽 운동도 전개했다. 1909년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사건과 관련하여 배후 인물로 지목되어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으나 무혐의로 석방되었다. 1910년 7월 한일 병탄 전 이갑 등과 함께 독립 방략을 모색한 청도 회담에 참가하였다. 1911년 이른바 105인사건에 연루되어 1년 6개월 간 복역했다.

1913년 출옥 후 유동열은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해 이동휘, 이갑, 이강 등과 러시아 각 지역 책임자를 선출해 신민회를 재정비하였다. 이상설, 이동휘 등과 권업회 활동을 통해 이주 한인의 권익 옹호와 독립 쟁취의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17년 러시아 연해주 쌍성(雙城)에서 문창범 등과 전로한족회를 조직했다. 1918년에는 서일의 중광단에 가입했다. 1918년 3월 하바롭스크에서 원동인민위원회 위원장 크라스노체코프 주최로 열린 조선인민혁명가대회에 이동휘, 양기탁, 이동녕, 김립, 박애 등과 참석하고 한인사회당을 발기했다. 1918년 5월 한인사회당 군사부장 겸 군사학교장에 선출되었다. 유동열한인사회당에서 출판하는 역사와 지리 교과서 등의 조선어 번역을 담당하였으며, 일본군의 시베리아 출병에 맞서 1918년 7월 조직된 한인사회당한인적위대 지휘관으로 이만 전투에 참가하였다. 1918년 9월 4일 하바롭스크가 백위군에 함락되어 김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등과 함께 도피하던 중 9월 10일 체포되어 백위파의 심문과 즉결 재판을 받고 석방되었다.

유동열은 1919년 2월 김동삼, 김좌진 등과 「대한독립선언서」의 39인 중 한 명으로 참여하였고, 1919년 상해 통합 임시 정부의 초대 군무총장에 임명되었다. 1921년 이르쿠츠크에서 개최된 고려공산당 창립 대회 다음날 고려공산당 중앙 간부의 추천으로 동양비서부가 승인한 고려혁명군정회의 군정위원으로 선출되어 고려혁명군정회의 제1고려혁명군 사령관 서리로 활동 했다. 이후 이르쿠츠크로 이동한 고려혁명군 군정회의가 제5군단에 편입되자 산하 사관학교의 임시 교장을 역임했다. 유동열은 1935년 남경(南京)에서 김규식, 지청천 등과 함께 조선민족혁명당을 조직해 독립군단의 통일전선 구축에 헌신했다. 1938년 한국국민당, 조선혁명당, 한국독립당의 통합을 추진해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에 임명되었다. 1945년 2월 홍진 등과 신한민주당을 창당해 광복을 준비하였다. 유동열은 1945년 광복 후 귀국하여 미군정청 초대 통위부장(統衛部長)을 지냈고, 한국 전쟁 때 납북되었다.

상훈과 추모

1989년 대한민국 정부는 유동열의 공적을 기려 건국 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반병률, 『1920년대 전반 만주·러시아지역 항일무장투쟁』(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반병률, 『여명기 민족운동의 순교자들』(신서원, 2013)
  • 박종연, 「춘교 유동열의 생애와 독립운동」(서강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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