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덕순

한자 禹德淳
영문 Woo Deoksu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시대 근대/개항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6년 2월 26일
활동 시기/일시 1908년 6월
활동 시기/일시 1909년
활동 시기/일시 1909년
활동 시기/일시 1909년 10월 26일
활동 시기/일시 1913년
활동 시기/일시 1921년
활동 시기/일시 1924년
활동 시기/일시 1946년
활동 시기/일시 1946년
활동 시기/일시 1946년
활동 시기/일시 1948년
몰년 시기/일시 1950년 9월 26일
추모 시기/일시 1962년
출생지 대한민국 충청북도 제천시
거주|이주지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활동지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묘소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사당2동 산41-2] 국립서울현충원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열사안중근선생기념사업협회 위원장
정의

1900년대 초반 러시아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우덕순(禹德淳)[1876~1950]은 안중근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 암살에 가담한 독립운동가이다.

가계

우덕순의 본관은 단양(丹陽), 호는 단운(檀雲)이다. 아버지 우시영(禹始映)과 어머니 윤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우덕순은 1876년 2월 26일 충청북도 제천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잡화상을 운영하다가 1906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하였다. 우덕순이범윤(李範允) 진영에서 함께 활동하던 중 1908년 안중근을 만나 함께 동의회블라디보스토크 공립협회에 참여하였다. 1908년 7월경에 국내 진공 작전에 가담하였다. 우덕순은 이후 의병 활동을 하던 중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1908년 6월 19일 함흥 재판소로 이송되어 7월 30일과 8월 초순에 재판을 받았다. 재판에서 사형이 구형되었지만, 김재익과 이창도의 도움으로 탈옥했다. 1909년에는 대동공보사 수금원과 한인상업회사 발기인으로 활동했다.

1909년 10월 21일 우덕순안중근 등과 이토 히로부미 처단을 모의하고 먼저 하얼빈으로 출발했다. 10월 21일 포그라니치나야(Пограничная)에 내린 안중근유동하를 데리고 하얼빈으로 왔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체포된 후, 우덕순유동하와 함께 러시아 헌병에게 체포되어 총 네 차례에 걸쳐 신문을 받았다. 1910년 2월 14일 징역 3년을 언도받고 여순 감옥에서 복역 중 1908년의 의병 활동이 드러나 1910년 7월 함흥으로 이송되어 15년 징역형을 받았다. 이에 항고하여 서울로 이송되었으나 항소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감형 받아 1913년 봄에 특사로 출옥하였다.

우덕순은 1917년 10월, 전로한족중앙총회 기관지 『청구신보』 발행에 100루블을 기부하였으며, 1921년 조선인민회, 1924년 만몽산업회에 참여하였다. 해방 후에는 ‘의사안중근동상건립기성회’ 부회장, ‘안중근의사 순국 37주기 추도준비회’ 위원장, ‘열사안중근선생기념사업협회’ 위원장을 지냈으며 1948년부터 대한국민당에 참여해 활동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후 서울에 남아 있다가, 1950년 9월 26일 북한군에게 처형되었다.

상훈과 추모

1962년 대한민국 정부는 우덕순의 공적을 기려 건국 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박환, 『러시아 한인 민족 운동사』(탐구당, 1995)
  • 신운용, 「우덕순의 민족 운동과 해방 공간 활동」(『한국민족운동사연구』81,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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