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묵

한자 吳夏默
영문 Ok Hamook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5년
활동 시기/일시 1914년
활동 시기/일시 1917년
활동 시기/일시 1918년
활동 시기/일시 1920년 8월
활동 시기/일시 1921년 6월
활동 시기/일시 1923년
활동 시기/일시 1925년
몰년 시기/일시 1937년
출생지 러시아 연해주 포시예트 지역 파타시 마을
활동지 러시아 연해주
성격 독립운동가|군인
성별
대표 경력 자유대대 사령관|고려혁명군정의회 부사령관|고려혁명군 여단장
정의

일제 강점기 러시아 연해주 지역 한인 빨치산 부대의 지휘관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오하묵(吳夏默)[1895~1937]은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뒤 자유시에서 결성된 자유대대를 중심으로 한인 무장 단체의 통합을 목적으로 고려혁명군정의회고려혁명군 결성을 주도했다. 러시아 이름은 흐리스토포르 니콜라에비치 오가이이다.

활동 사항

오하묵은 1895년 러시아 연해주 포시예트 지역 파타시 마을에서 태어났다.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고향 마을에서 교사로 일했다. 1914년 제정 러시아 군대에 징집되어 이르쿠츠크에서 군사학교를 졸업한 후 서부 전선에 출전했다. 1917년 2월 혁명 당시 연대 소비에트 위원으로 선출되었나 전투 중 부상을 당해 전역했다. 오하묵은 전역 이후 하바롭스크에서 1918년 한인사회당에 참가했으며, 1920년 아무르 자유시에서 조직된 자유대대에 참모부로 참여해 1920년 8월 사령관이 되었다. 1920년 10월부터 오하묵자유대대를 중심으로 한인 무장 부대를 통합하려는 활동을 전개했다. 오하묵은 이르쿠츠크에서 코민테른 극동비서부와 이르쿠츠크 한인 사회주의자들과 협의를 통해 연해주 한인 무장 단체를 통합할 조직으로 고려혁명군정의회를 결성하고 부사령관을 맡았다. 1921년 6월 자유시 사변을 거치면서 한인 무장 단체는 고려혁명군으로 통합되었고 오하묵은 제3연대장과 여단장을 역임했다.

이후 1923년부터 1925년까지 오하묵은 레닌그라드국제군사학교 중급 지휘관 양성 학교 한인과장으로 근무했다. 이때 오하묵은 한인 청년들에게 군사에 관한 지식을 알리기 위해 잡지 『말과 칼』을 발행했다. 오하묵은 1925년부터 1937년까지 적군의 연대장으로 복무하다가 1937년 탄압을 받고 총살되었다.

참고문헌
  • 박환, 『재소한인 민족운동사-연구 현황과 자료 해설』(국학자료원, 1998)
  • 박 보리스 드미트리예비치·최 발렌틴 발렌티노비치, 『사진으로 본 러시아 한인의 항일 독립운동』(국사편찬위원회·재러독립유공자후손협회·주러시아연방 한국대사관, 2004)
  • 윤상원, 「러시아 지역 한인의 항일 무장 투쟁 연구(1918~1922)」(고려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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