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주필

한자 嚴柱弼
영문 Um Jupil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1년
활동 시기/일시 1918년
활동 시기/일시 1918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7일
활동 시기/일시 1920년 3월 14일
몰년 시기/일시 1920년 4월 7일
추모 시기/일시 1995년
출생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거주|이주지 러시아 연해주 니콜리스크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니콜리스크 제3대 재류한인민단장
정의

일제 강점기 러시아 연해주 니콜리스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엄주필(嚴柱弼)[1871~1920]은 함경북도 출생으로 러시아 연해주에서 재류한인민단장으로 활동하며 재러 한인 사회의 권익 옹호에 앞장섰다. 1919년 러시아 연해주 니콜리스크의 3·1 만세 운동을 이끌었고, 항일 빨치산 지원을 위한 군자금 모집 등 독립운동에 참여하다가 1920년 4월 일본군에 체포되어 피살되었다.

가계

엄주필의 처는 이문숙이다.

활동 사항

엄주필은 청년 시절 대한제국 군대에서 복무했으나 일제 강점 이후 장로교 전도사로 가장해 반일 운동에 참여했다. 1914년 경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갔다.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러시아 연해주 니콜리스크로 이주했다. 여기서 김이직, 이갑, 최재형, 이동휘 등과 함께 반일 운동을 했다. 기독교 장로교회에서 집사를 맡으며 이문숙과 재혼했고 정거장 근처에서 농사를 지었다. 1918년 6월 러시아 연해주 니콜리스크에서 개최된 제2회 특별전로한족회대표회의에 니콜리스크 대표로 참석했고 전로한족중앙총회 검사원으로 선출되었다. 1918년 제3대 한인회장[재류한인민단장(在留韓人民團長)]에 선출되어 독립운동을 지도했다. 1919년 1월 말부터 2월 초까지 러시아 연해주 니콜리스크에서 개최된 지방대표원회의에 참석했고 최재형, 문창범, 한명세 등 다섯 명의 한인 지도자들과 함께 파리강화회의 대표를 뽑는 데 맡은 바 역할을 했다. 1919년 오성묵, 한군명 등과 함께 「독립선언문」을 인쇄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여 1919년 3월 17일 개최된 니콜리스크의 3·1 만세 운동을 이끌었다. 이후 러시아 연해주와 간도에서 항일 빨치산 운동이 활발해지자 러시아 연해주 니콜리스크에서 최재형, 김이직 등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고 선포문을 인쇄하여 배포했다. 1920년 3월 14일 한인사회당총회에서 의사원으로 선출되었으나 1920년 4월 일본군에게 체포되었고, 4월 7일 수감 중에 탈출하려다가 일본 헌병에게 피살되었다.

상훈과 추모

1995년 대한민국 정부는 엄주필의 공적을 기려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반병률, 『여명기 민족운동의 순교자들』(신서원, 2013)
  • 반병률, 「제2회 특별전로한족회대표회의(1918년 6월)와 러시아 한인 사회」(『역사문화연구』17,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2002)
  • 『독립신문』(1920.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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