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嚴仁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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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 Um Inseob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러시아 연해주지방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87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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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8년 5월 |
활동 시기/일시 | 1908년 7월 |
활동 시기/일시 | 1910년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
몰년 시기/일시 | 1936년 |
출생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경흥 |
활동지 | 러시아 연해주 |
성격 | 독립운동가|일제 밀정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동의회 부회장|일제 밀정 |
개항기 러시아 연해주 항일 의병이었다가 일제 강점 이후 변절한 일제 밀정.
엄인섭은 1875년 함경북도 경흥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가 최재형의 조카로 일찍이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연해주에 정착한 엄인섭은 러시아군으로 러일 전쟁에 참여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 항일 의병 활동이 활발해지자 엄인섭은 최재형의 막료로 활동하면서 의병 활동을 주도하였다. 최재형과 엄인섭이 함께 한 대표적인 활동이 동의회였다. 1908년 5월 러시아 연해주 연추에서 동의회가 결성되었고, 최재형이 총장형, 이범윤이 부총장이었고 엄인섭은 부회장이었다. 1909년 이범윤이 동의회에서 배제되었고, 최재형을 중심으로 동의회가 운영되면서 안중근과 엄인섭이 동의회의 실제 사무를 맡아보았다. 동의회는 20~30여 명이 활동하는 회원이었으며, 총 회원 수는 2,000~3,000명에 이르렀다. 엄인섭은 동의회에서 1908년 국내 진공 작전을 이끌었다. 1908년 7월 전익제, 안중근, 엄인섭 등이 이끄는 연해주 의병은 두만강 대안에서 대기하다가 1908년 7월 7일 두만강을 넘어 함경북도 경흥군으로 진격하였다. 당시 국내 진공 작전은 최재형의 동의회와 이범윤이 주관하는 창의회 소속 의병들이 함께 한 연합 작전이었다. 안중근이 우사령, 엄인섭이 좌사령으로 대원을 나누어 인솔하였고, 전제익이 전체 부대의 통솔을 맡았다. 연해주 의병의 연합 진공 작전과 별개로 엄인섭 휘하의 이명호가 인솔하는 의병 소부대가 두만강변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1910년 무렵 엄인섭의 휘하에 총 263명의 의병이 있었다고 알려졌다.
1910년 이후 엄인섭은 일본의 밀정으로 변절하여 1910년대 러시아 연해주의 한인 민족 운동을 방해하였고, 1920년 15만원 사건으로 일제의 밀정임이 발각되었다. 1936년 중국 훈춘에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