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근

한자 安定根
영문 An Jeongkeu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5년 1월 17일
활동 시기/일시 1918년
활동 시기/일시 1918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11월
활동 시기/일시 1921년
활동 시기/일시 1921년
활동 시기/일시 1922년 5월
활동 시기/일시 1939년
몰년 시기/일시 1949년 3월 17일
추모 시기/일시 1987년
출생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황해도 신천
활동지 러시아 니콜리스크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
정의

일제 강점기 러시아 연해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안정근(安定根)[1885~1949]은 신한청년당을 창당하였으며, 상해 임시 정부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적십자 운동을 하였고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상해 지역 교민들의 권익과 독립 의식 함양을 위하여 활동하였다. 안정근의 종교는 천주교이다.

가계

본관은 순흥(順興)이며 일명은 안청(安淸)이다. 안정근의 아버지는 안태훈(安泰勳), 어머니는 조씨 부인이다. 안중근이 형이고 안공근이 동생이다. 배우자는 이정서이고, 자식은 안원생, 안미생[김구의 장남 김인의 처], 안진생이 있다.

활동 사항

안정근은 1885년 1월 17일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났다.

안중근 서거 후 1914년 6월부터 『권업신문』에 게재된 계봉우의 「만고의사 안중근전」의 관련 자료들을 제공해 민족의 자긍심과 독립 의식을 높였다. 1918년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개최된 ‘조선정치망명자협의회’에 이동휘, 양기탁, 유동열, 이동녕, 김립, 박애 등과 참석하였고, 입헌 군주제적 입장에서 러시아 원동인민위원회로부터 후원만 얻자는 이동녕의 주장을 지지하였다. 1918년 11월 길림에서 「무오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독립 의지를 천명하였다.

1918년 상해에서 신한청년당을 창당해 김구와 함께 이사에 선출되었다. 1919년 11월 고향인 황해도 신천군의 상해 임시 정부 국내 조사원으로 활동하였다.1920년 천주교와 의병 계열의 대한의민단과 제휴하는 등 독립 자금 마련을 위한 임시 정부 공채 모집과 인도적 차원의 적십자 운동을 하였다. 1921년에는 임시 정부의 특파원으로서 왕덕삼과 함께 북간도와 러시아 일대에 파견되어 대한국민회와 북로군정서 간의 조정 역할과 임시 정부의 군무 시정 방침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러시아 니콜리스크시에서 중로연합선전부(中露聯合宣傳部)를 조직하고 선전부장이 되어 간도에 있는 일본 군경에 대한 정찰과 전투를 하였다. 1921년 간도와 훈춘에서 독립운동을 선전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1년 7월 중국 상해에서 시사책진회(時事策進會)에 참여해 독립운동 방략 등을 조정하는 데 주력하였다. 1922년 중국 상해에 있는 중한호조사(韓中互助社) 총사를 설립하고 영업과 간사가 되어 중국과의 친화를 도모하였다. 한문으로 된 『독립신문』을 발행하여 독립운동을 선전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2년 5월 임시 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에 선출되었으며, 신한청년당의 당 내부에 분열이 생기자 임시 정부 계열인 김구와 김인전 등과 함께 탈당하였다. 1923년 10월 24일 상해교민단 제4회 의원 선거에서 의원으로 선출되어 교민 사회의 권익과 조국 독립을 위한 의식 함양에 힘썼다. 1926년에서 1936년까지 친형인 안중근의 “한국의 발전을 위해 공업 또는 식림 같은 한국을 위한 일에 종사토록 부탁”한 유언에 따라, 조국 광복에 대비하여 조선 사업으로 위장, 공작선(工作船) 건조에 진력하며 일제의 탄압을 피해 홍콩으로 피신하였다. 1939년 뇌병으로 은퇴하고, 홍콩과 상해를 전전하다 1949년 3월 17일 뇌병으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7년 대한민국 정부는 안정근의 공적을 기려 대한민국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반병률, 『1920년대 전반 만주·러시아지역 항일무장투쟁』(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국가보훈처(http://www.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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