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공근

한자 安恭根
영문 Ahn Gongkue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9년 7월 11일
수학 시기/일시 1909년
활동 시기/일시 1918년 2월
활동 시기/일시 1920년 1월
활동 시기/일시 1928년 3월
활동 시기/일시 1930년 1월
활동 시기/일시 1931년 11월
활동 시기/일시 1933년
활동 시기/일시 1934년 1월
활동 시기/일시 1935년 3월
활동 시기/일시 1936년
활동 시기/일시 1937년 2월
활동 시기/일시 1937년 8월
추모 시기/일시 1995년
출생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황해도 신천군 두라면 청계동
거주|이주지 러시아 연해주
거주|이주지 중국 상해
활동지 러시아 연해주
활동지 중국 상해|중국 중경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한인애국단 부단장|대한민국 임시 정부 상임 국무위원
정의

1910년대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안공근(安恭根)[1889~?]은 안중근의 막내 동생으로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상해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러시아 연해주에서는 한인 사회의 지도자로 활동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는 모스크바 외교를 담당하여 활약하였다. 1930년 이후로는 김구와 함께 일제에 대한 특무 활동에 전념하였다. 안삼재(安三才)·조한용(趙漢用)·장진구(張震球) 등의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가계

안공근의 본관은 순흥(順興), 호는 신암(信奄)이다. 할아버지는 진해현감을 지낸 안인수, 아버지는 진사 안태훈, 어머니는 조마리아이다. 안중근(安重根), 안정근(安定根)의 동생이다.

활동 사항

안공근은 1889년 황해도 신천군 두라면 청계동에서 3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큰형인 안중근의 의거 직후 공범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풀려난 후 1909년 11월 중국 대련으로 가서 안중근의 옥바라지에 매달렸다. 이후 1910년대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해 권업회에서 활동하였다. 1918년 2월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김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이동휘가 주도한 한인망명자회의에 신민회 회원들과 함께 참석하여 소비에트 정부의 단순한 후원만을 받고 순수한 민족주의 단체를 조직하자는 ‘신민회 우파’의 주장에 동조하였다. 1920년 1월 안공근한형권·여운형과 함께 외교 교섭을 위해 러시아 모스크바로 파견될 특사로 선정되었지만, 당시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5월이 되어서야 중국 상해에 도착하였다. 그 사이 4월에 한형권은 홀로 러시아 모스크바로 떠나 레닌과 교섭을 진행하였다. 1921년 5월 대한민국 임시 정부 국무회의는 한형권을 소환하고 러시아와의 교섭 담당자로 이희경을 선정하였다. 7월에 이희경이 중국 상해를 떠나 러시아 모스크바를 향할 때 안공근도 함께하였다. 안공근과 이희경은 독일 베를린을 거쳐 1922년 초에 러시아 모스크바에 도착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위한 외교 활동을 벌였지만 특별한 성과 없이 귀환하였다.

안공근은 1926년 2월 여운형의 뒤를 이어 상해교민단 단장에 취임하였다. 1926년 5월 이유필, 최창식, 오영선 등과 함께 독립운동촉진회를 결성하고 독립운동 단체의 대동단결을 주장하는 선언서를 발표하였다. 1928년 3월 중국 상해에서 유기석, 윤호연, 이을규 등과 함께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30년 1월 한국독립당에 참여하였고, 1931년 11월경 김구가 조직한 한인애국단 단원이 되면서 이후 김구와 함께 활동하였다. 한인애국단은 일제 요인 암살과 주요 시설 파괴를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로 후에 안공근은 부단장에 오른다. 1931년 이봉창 의사가 선서식을 거행한 곳과 윤봉길 의사의 사진을 찍은 곳이 모두 안공근의 집이었다.

안공근은 1933년 박찬익, 엄항섭 등과 함께 친일 활동을 하는 상해한국인친우회 위원장 유인발과 옥관빈의 처단을 주도하였다. 1934년 1월 한인애국단원들과 함께 동북의용군 이청천 계열과 합동으로 중국 하남성 낙양군관학교 분교에 한인군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을 훈련시켰다. 1935년 3월 흑색공포단 단원 엄순봉 등에게 조선인거류민회 고문 이용로를 처단하도록 지시하였다. 1936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상임 국무위원으로 선임되었으며, 1937년 2월 장남 안우생과 함께 한국청년전위단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1937년 8월에는 한국국민당 당원들과 함께 중국 상해에 잠입한 친일파 한인과 중국인 암살을 시도하였고, 한국국민당·한국독립당·조선혁명당 등과 미국 내 독립운동 단체를 연합한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를 조직하여 1938년까지 활동하였다. 1939년 중국 중경에서 실종되었다.

상훈과 추모

1995년 대한민국 정부는 안공근의 공적을 기려 건국 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임경석,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역사비평사, 2003)
  • 반병률 외, 『이승만과 대한민국 임시 정부』(연세대학교 출판부, 2009)
  • 오영섭, 「안공근의 생애와 항일 독립운동」(『숭실사학』35, 숭실사학회,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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